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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솔로 돋보이는 14분 대곡 영성 깃든 듯한 와츠 음성이 제맛

중앙선데이 2011.08.21 00:42 232호 27면 지면보기
낮의 활기가 다 걷힌 깊은 밤이어야 한다. 홀로여야 하고 번잡한 일과로 꽤 피곤한 상태에서 목욕을 마쳤으면 더 좋다. 배는 약간 출출한 상태, 그리고 실내 조명은 어둑해야 한다. 영혼이라는 자가 슬며시 강림하는 시간이다. 별주부전의 토끼가 용왕님께 고하길 간은 소중한 것이어서 꺼내놓고 다닌다고 했다. 영혼도 마찬가지다. 햇빛 아래 분주히 돌아다닐 때면 뇌의 지퍼를 열어서 영혼을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영혼의 생김새는 둥그럴까 뾰족할까. 색깔이며 냄새는 어떨까. 어떤 장발시인 풍으로 하자면 영혼이 곁에 있어도 나는 영혼이 그립고 또 멀다. 그런데 아, 깊은 밤 어둑한 실내로 그는 오는 줄 모르게 온다. 연기처럼 가스처럼 몸속에 스며들어 있는 영혼. 영혼에게 말을 건넨다.

詩人의 음악 읽기 브람스의 알토랩소디와 헬렌 와츠

“우리 무얼 할까?”

두말하면 잔소리지. 음악을 듣는 거다. 팝이든 가요든 먹성 좋게 곡을 소화하는 시체놀이 때와는 달라서 고독한 영혼놀이 때는 레퍼토리가 꽤 제한된다. 음악쟁이들이 편애하는 목록을 따르는 게 좋다. 먼저 떠오르는 곡이 브람스의 알토랩소디. 정확한 명칭은 ‘겨울 하르츠 여행에 의한 알토, 남성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인데 비장한 솔로에서 장엄한 하모니로 종결되는 14분가량의 대곡이다.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세상을 증오하고 원망해 춥고 황량한 겨울의 하르츠 산맥을 헤매고 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대체 어찌하면 좋은가. 노래 후반부가 점점 세게 고조된다. ‘그의 심장을 소생케 하소서! 그의 흐린 시야를 열어 주소서! 황야에서 고갈된 목마른 우물 곁에 수천 개의 샘이 솟아남을 보게 하소서!’ 증오에 찬 가련한 영혼의 구원을 절대자에게 간구하는 목청과 악기들이 최대치로 음량을 뽑아내는 피날레. 이때 오디오 볼륨은 두어 층 아래에서 아저씨가 씨근벌떡 뛰어 올라와 아파트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게 만들 정도가 좋다. 이건 내가 실제 경험한 실화인데, 문을 부수는 아저씨를 향해 “저어… 영혼을 구원하느라…” 어쩌고 했더니 순간 멍하게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 표정이 그야말로 일곱 살배기였다.

헬렌 와츠가 부른 브람스의 알토랩소디 음반.
그런데 누구의 목소리가 좋을까. 이 곡은 드물게 알토 또는 콘트랄토를 위한 노래다. 콘트랄토는 남성의 베이스처럼 여성에게 가장 낮은 음역으로, 오페라에서는 항상 사악한 마녀나 음침한 노파로 배역이 주어진다. 콘트랄토로서 특출한 인물은 정해져 있다. 캐서린 페리어와 마리안 앤더슨. 전화교환수 출신으로 서른 넘어 데뷔하고 마흔 한 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페리어의 깊고 품위 있는 음성은 절로 경배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만인이 사랑하는 정말 위대한 가수다. 미국의 흑인으로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앤더슨 역시 노래의 감동 못지않게 인권과 평화에 헌신한 행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소박한 외모인데도 그녀에게는 위엄과 내면의 고상함이 넘쳐난다. 역시 위대한 가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콘트랄토는 따로 있다. 영국의 헬렌 와츠(큰 사진). 그녀는 유명하지 않다. 두드러진 행적도 없고 잘 알려진 독집 음반조차 없는 만년 조역이 헬렌 와츠다. 바흐·헨델·비발디·퍼셀 등의 종교음반에 한 배역으로 등장할 뿐인 헬렌 와츠에게 매료된 것이 바로 브람스의 알토랩소디를 통해서였다. 명료한 존재감이랄까, 콘트랄토의 자리는 외진 구석에 있건만 그녀는 그 위치를 사랑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느낌이다. 드물게 주역 노릇을 하는 알토랩소디의 솔로에서 와츠의 보컬은 이런 면이 있나 싶게 풍요롭고 색채감 짙게 표현된다. 칸타타나 오라토리오 음반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고 유심히 들어보면 관객들이 주목하지 않는 무대 한편에서 최선을 다하며 행복해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언젠가 그녀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 ‘당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항상 상기하라, 자기를 존중하라’는 요지의 말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무척 순박하고 수줍어 보였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삼손’ 가운데 ‘만군의 하나님 우리를 돌이키시고’를 부르는 헬렌 와츠의 음성에는 정말로 영성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지퍼를 열고 내보낸 영혼을 되찾을 새 없이 분주하게 살아들 간다. 사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어쩌면 영혼은 귀찮은 존재인지 모른다. 투자가치도 별로 없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다. 스펙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함부로 영혼을 소지하면 중뿔나 보이기 일쑤다. 결정적으로 건강과 장수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 뭐 어쩌겠는가. 돛대도 삿대도 영혼도 없이 별일 없이 잘만 간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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