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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골 청년의 기적

중앙선데이 2011.08.21 00:30 232호 30면 지면보기
우리는 누군가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번쩍 하는 순간을 마주친다. 어떤 것은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 어떤 것은 새로운 것을 보게 만든다. 다른 이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한다. 최근 내게 일어난 일들이 그랬다.

몇 달 전 주한 캐나다대사관의 모금 행사에서 케이시 퍼트먼을 만났다. 미국 테네시주 로런스버그 출신인 그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단다. 서울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케이시에게 들은 동생 웨스의 이야기는 이렇다.

웨스는 과속으로 달리는 택시에 치였다. 서초동 집 앞에서 길을 건너는 중이었다. 응급 뇌수술을 받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졌다. 웨스의 친구들이 전화를 돌렸고 간신히 미국 테네시에 사는 가족에게 연락이 닿았다. 케이시와 어머니 모니타는 곧바로 짐을 쌌지만, 테네시에서 서울은 너무나 멀었다. 더구나 그들은 비행기를 한번 타 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여권도 없었다. 시간은 더 지체됐다. 그들은 사고가 난 일주일 뒤에야 서울에 도착했다. 삶은 이처럼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7개월 전 낯선 나라 한국을 찾아 떠났던 웨스가 누워 있었다. 오른쪽 눈은 잔뜩 부풀었고 뇌수술로 뇌의 일부분을 잃은 채였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가족이 한국에 왔지만 의식을 잃은 웨스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몇 주 후 나는 페이스북에서 그의 이야기를 읽었다. ‘웨스 퍼트먼을 돕는 사람들(Wes Putman Support Group)’이란 모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고 있었다. 긍정적이고 희망으로 가득한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많은 이의 도움을 가능하게 만든 페이스북은 마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감동으로 넘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다행스럽게도 웨스는 마침내 깨어났다. 사고 석 달 만인 7월 6일이었다. 그때 엄마인 모니타는 아들이 누운 침대 옆에서 편지를 읽어 주고 있었다고 한다.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였다. 모니타가 물끄러미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 아들의 눈이 뜨였다. 천천히 엄마와 눈을 맞추었다. 엄지손가락도 들어 올렸다.

지금 그는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오른쪽 시력을 잃고 근육 위축으로 인한 경련도 생겼다. 몸의 오른편에는 마비가 생겨 움직임도 부자연스럽다. 읽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식사를 하거나 말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의사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느리지만 완전하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견해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웨스는 결국 깨어났다. 희망을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웨스는 처음 한국에 왔던 나를 떠오르게 한다. 그가 한국에 온 까닭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본격적인 직업을 찾고 정착하기 전에 넓은 세상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도 그랬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 머물게 됐지만, 나도 처음엔 웨스와 같은 생각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모험심 강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큰 위기를 겪었다. 그의 엄마는 평생 한 번도 방문할 거라 생각지 못한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 와서 아들을 간호하고 있다.

삶이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웨스가 보여줬듯 기적이 일어나는 삶은 소중하다. 주위를 살피고, 나도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웨스의 가족이 사고의 악몽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락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8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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