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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시원한 최백호의 바다, 차분하고 조용한 정태춘의 바다

중앙선데이 2011.08.21 00:30 232호 10면 지면보기
제주도 민요 ‘이어도사나’에는 “우리 어멍(어머니) 날 낳을 적에 어느 바당(바다) 미역국 먹엉(먹었을까)”이라는 구절이 있다. 높고도 거칠게 부르는 이 한 구절이 목을 울컥하게 만든다. 잠녀(‘해녀’를 제주도에서는 잠녀라고 한다)들은 자신을 낳고 이 바다의 미역국 먹었을 엄마도 자신처럼 이렇게 평생 물질로 살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이제 막 물질을 배우는 딸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23> 고향바다

하지만 대중가요에서 이렇게 갯냄새에 인생살이의 깊이를 버무린 구절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중가요는 서울내기들의 감수성에 조율된 노래이기 때문이다. 강릉 출신인 영화평론가 조선희는 자신의 책에서 중·고교 시절 친구들과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라며 노래를 불렀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척에 동해를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얼토당토않은 노래였으나, 서울 중심의 감수성은 이렇게 전국을 지배한다.

하지만 바다를 고향으로 삼고 성장했던 사람들은 가끔 ‘서울 촌닭’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노래로 형상화했다. ‘이어도사나’에 견주기에는 턱도 없지만, 그래도 인어나 고래가 사는 바다가 아니라 정말 갯냄새 나는 바다의 실감을 지닌 노래가 가끔은 발견되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최백호<사진>의 ‘영일만 친구’, 1979, 최백호 작사·작곡)

“1.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조용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나/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2. 서해 먼 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물결 따라 멀어져 간다.”(정태춘의 ‘서해에서’, 1977, 정태춘 작사·작곡)

두 노래 모두 바다의 생생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노래지만 느낌은 참 많이 다르다. 그 차이는 아마 그들의 고향 바다가 달랐기 때문이리라. 최백호는 부산 사람이니 동남해 바다를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투박하고 직설적인 말솜씨만큼 그의 노래에는 경상도 바닷가 사람들의 느낌이 스며 있다. 비록 노래 배경인 경북 영일만이 그의 고향에서는 다소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일렉트릭기타 반주에 선율을 싣고 빠른 속도로 쭉쭉 뻗어나가는 이 노래는 동남해 바다의 거칠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다.

그에 비해 정태춘의 고향은 평택이다. 나지막하고 잔잔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그가 어릴 적만 해도 황포돛배가 있었으니 노 젓는 사공도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습이었다. 이 노래는 군대 갔을 때에 인천에 근무하며 만든 노래라고 하는데, 평택이든 인천이든 제목처럼 ‘서해’임은 분명해 보인다. ‘영일만 친구’의 거친 바다와 비교하면 ‘서해에서’의 바다는 너무도 차분하고 조용하다. 노 젓는 사공조차 말 한마디 없다. 그 잔잔하고 조용한 바다를 비추는 노을은 비단결처럼 곱다. 서해에서만 볼 수 있는 기막힌 풍경이다. 이 시각성에 섬을 떠날 때 눈물로 옷자락을 적셨던 사람의 마지막 손길의 촉감, 물결 따라 멀어져 가는 섬마을 아이들의 아련한 웃음소리의 청각성까지 더해진다. 분위기는 잔잔하지만 시각·청각·촉각을 고루 건드리는 이 노래의 감각성은 매우 화려하고 섬세하다.

이렇게 바다를 끼고 살았던 사람들은 바다로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다. 또 바다를 통해 우주와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바다를 통해 가족과 역사를 이해한다. 부산 동의대 학생들의 작품으로 1985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바다에 누워’는 그런 느낌이 물씬 배어 있다.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 듯 씻기어간다/ 일만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물살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딥디딥 딥디 디비디비딥.”(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1985, 박해수 작사, 김장수 작곡)

가사가 다소 어수선한 습작의 느낌이 있지만 “일만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같은 대목은 바닷바람이 낯설지 않고 모래사장에서 뒹굴며 살았던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수가 되어 고향바다를 떠나 서울사람이 되었다. 정태춘처럼 평택의 질감을 끈질기게 지녀온 경우도 없진 않지만, 이들 대부분은 서울사람 못지않게 서울의 감각을 세련되게 구현했다.

그렇게 살다 문득 자신이 누구인가 되돌아보게 될 때가 있었으리라. 이런 자각의 시간에 만들어진 노래는 감동스럽다. 함경도 출신 월남민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뿌리박은 거제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강산에는 90년대 내내 세련된 꽁지머리 휘날리며 노래를 했으나 마흔을 갓 넘긴 2002년 자신의 본명 ‘강영걸’을 음반 제목으로 삼아 함경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인 노래들을 발표했다.

“1.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데이
(랩) 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 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 하고, 괴긴 국을 끓여먹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태, 그 기름으로는 또 약용으로도 쓰인데제이요, 에잉/ (하략).”(강산에의 ‘명태’, 2002, 강산에 작사·작곡)
아버지의 고향 함경도의 생선 명태를 소재로 삼아 시종 함경도 억양과 사투리로 지껄이는 이 기막힌 노래는 아버지와 자신에게 바다가 그저 완상의 대상이나 관광지가 아니라 생선 냄새 나는 고향이고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바닷길이었음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이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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