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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내마을에서 만난 평화

중앙선데이 2011.08.21 00:28 232호 31면 지면보기
춘천시의 동쪽 끝 부분에 동내면(東內面)이 있다. 논, 밭, 과수원과 집들이 어울려 있는 조용한 농촌지역이다. 아파트 부근을 산책하면서 이름 없는 작은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이 마을이 나타났다. 호젓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소양호에서 피어난 낮은 구름들이 대룡산 중턱에 걸려 있고, 푸른 빛의 금병산이 남쪽에 솟아있으며, 콸콸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서 백로가 물고기를 쪼아 올리고 있었다. 이 정경에 반해 그 후 틈만 나면 이곳을 찾게 되었다.

두어 달 전이었다. 그곳에 갔다가 이발관이 보여서 들어갔다. 허름한 건물에 ‘금강이발’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는데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만큼 낡고 작았다. 한참을 기다리니까 이발관 주인이 들어오는데 푸근하면서도 활력이 넘쳐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첫마디가 “마음에 들게 이발할지 모르겠네유”였다. 외지 사람은 이 이발관을 찾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75세로, 동네 토박이였고 그 자리에서 50년째 이발관을 해오고 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한국전쟁도 겪었으며 농사도 짓는다고 했다. 옛날에는 미장원이 없어서 여자도 이발관을 다녔고, 남자들도 머리를 자주 깎아서 수입이 괜찮았다고 했다. 옛 풍물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어서 재미있었고, 강원도 억양으로 툭툭 던지는 말의 내용이 여간 넉넉한 게 아니었다. 이발하던 시간이 내 일상과 따로 흐르는 듯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발관에 두 번째 갈 때는 이야기할 것을 미리 생각하고 갔다. 어떤 사람인지 그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비 때문에 농사를 망쳐서 걱정이 되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정확히 옮기면 이렇다. “망치면 망친 대로 살면 되지요. 남은 것 가지고 살면 돼요. 걱정할 것 없어요.” “그래도 속은 상하시지요?” “속상할 게 뭐 있나요. 망친 건 당초에 내 것이 아닌 거요. 아무리 망쳐도 굶어 죽진 않아요.” “몸이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왜 아픈 데가 없겠어유. 오래됐으니까, 그냥 사는 거지. 심하지는 않아서 참을 만해요.” 죽음, 불행, 심지어는 지난해의 배추 파동까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이 시원하고 소탈했다. 배추 문제에 대한 그의 대답은 특히 간명했다. “사람들이 일주일만 김치 안 먹고 참으면 배추값 오를 일 없었어요. 괜리 걱정하며 사재기를 해서 그런 거요.”

며칠 뒤 그곳으로 또 산책을 갔다. 보슬비가 내리는 저녁의 어스름에 싸인 금병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길에 서서 보고 있었다. 길 옆에는 천장이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긴 의자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있었다. 한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의자의 빈 부분을 툭툭 치며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알고 비를 피해 들어오라는 뜻 같았다. 작은 손짓이지만 친(親)동기간이라도 부르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 성격이 못 되는데도 스스럼이 없어졌다. 정류장 의자에 할머니들과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나를 부른 할머니는 92세, 옆의 할머니는 75세였는데 둘이 거의 친구처럼 말을 놓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이 마을로 시집을 와서 수십 년을 살았다는데 아들의 죽음, 가난 등 고생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92세의 할머니는 눈이 맑고 말도 수줍은 듯 조용히 했다.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갖고 살까 호기심이 생겨서 짓궂은 질문을 했다. “죽는 게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무서워? 살다가 가는 날 가면 되지.” “그래도 죽는 게 이상하지 않으세요?”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였던 깊은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었다. 고난과 불행, 죽음까지도 넉넉하게 대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만이 풍기는 기쁨의 향기가 있었다. 삶을 붙들어주는 근원을 깊숙이 보는 지혜가 이런 마음 아닐까. ‘지혜로운 노인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축복’이란 말이 떠올랐다. 이러한 노년이라면 한 번 살아볼 만하지 않겠는가.
동내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평화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윤재윤 법이 치유력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소년자원보호자제도, 양형진술서제도 등을 창안하고 시행했다. 철우 언론법상을 받았으며 최근엔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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