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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를 바꾸지 못하는 건 예술이 될 수 없다”

중앙선데이 2011.08.21 00:08 232호 8면 지면보기
1 베르사유 궁 전시 전경.
“11시30분에 온다면 인터뷰 후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가셔도 됩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필자에게 베르나르 브네는 자신의 어시스턴트를 통해 이렇게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브네의 식탁은 열려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필자도 얼결에 참석하게 됐다. 그것도 남프랑스 코타쥐르 르뮈(Le Muy)에 있는 베르나르 브네 스튜디오 겸 재단에서 이들 부부와 함께. 지중해를 발치에 둔 코타쥐르에서의 만남은 태양처럼 밝고 유쾌했다.

베르사유궁에서 전시 시작한 세계적인 개념주의 예술가 베르나르 브네

올해 서울 시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과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회고전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베르나르 브네는 철을 이용한 대규모 조각 작품과 과학과 수학적 기호를 이용한 추상화, 타르와 석탄을 소재로 한 설치 작품 등으로 개념주의 미술의 전통을 이어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베르사유궁의 현대미술 전시 작가로 선정되면서 고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철을 재료로 한 7점의 대형 조각 작품을 궁전 야외 곳곳에 설치했다. 이 조각들은 무거움과 가벼움, 어두움과 밝음, 채워짐과 비워짐이 공존하는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고요하고 명상적인 선과 형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육중한 무게감과 존재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베르사유를 찾은 수십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전시를 관람 중이다.

2 베르나르 브네 파운데이션 전시장 작품.
주 거주지인 미국의 뉴욕과 작품 제작소가 있는 헝가리·파리를 오가며 활동하는 브네에게 피카소, 마티스, 이브 클라인, 아르망 등 예술가들의 역사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남프랑스의 코타쥐르는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지닌 지역이다. 이 중에서도 르뮈는 그에게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1989년에 내 조각 작품을 설치하고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이곳을 찾게 되었어요. 원래 물레방앗간이었던 이곳은 당시 거의 폐허 같았는데 옆에는 강이 흐르고 아름다운 나무들과 너른 잔디가 있었죠. 게다가 물레방앗간 위에는 문을 닫은 옛 공장이 있었어요. 이곳을 보자마자 아내 다이안과 함께 ‘바로 여기다’라고 말했죠.”

3 베르나르 브네 파운데이션 전시장에서 베르나르 브네.
지금은 아주 훌륭한 전시 공간이 된 옛 공장 건물 안에는 그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잘 다듬어진 야외의 너른 정원 곳곳에는 대형 조각들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은 올해 처음 베르나르 브네 파운데이션의 이름으로 일주일에 하루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시작됐다.

“이곳은 내가 60년대부터 해왔던 작업들을 전시하는 곳이자 60년대에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던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될 거예요.”
그러면서 브네는 아직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자신의 컬렉션으로 필자를 안내했다. 그는 도널드 저드, 칼 앙드레, 솔르윗, 단 플라빈 등 현대 미술사에 남은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 150여 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이들 작가들과 자신의 작품을 교환하거나 아주 저렴한 값에 사 모으게 된 작품들은 세월이 흘러 매우 중요한 컬렉션이 되었다.

그는 또 이 재단을 통해 젊은 작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작업 공간과 머물 공간을 제공하고 나아가 이 공간에서 이들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60년대 초반 니스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조국인 프랑스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이름이 알려졌다. 그에게 미국으로 떠난 이유를 물었다.

“당시 스무 살이 조금 넘었던 나는 가난했습니다. 굶으면서 타르와 석탄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죠. 그래서 당시 현대 미술의 실험적인 시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뉴욕으로 갈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그때 작업을 가끔 도와주면서 친하게 된 아르망이 저에게 작품 한 점을 주면서 말했죠. ‘이걸 팔아서 미국에 가게. 그리고 미국에 가게 되면 절대로 멈추지 말게’라고요.”

그렇게 66년 미국으로 도착한 그는 2년 후인 68년 레오 카스텔리와 폴라 쿠퍼와 같은 명성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 71년에는 뉴욕 컬쳐 센터에서 개인전을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르망의 말대로 절대 멈추지 않았다. 평생 예술가로 살아갈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니스에서의 가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예술은 무엇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하고 힘든 작업이죠. 왜냐하면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하고 논리적이며 안정된 길을 거부하는 작업입니다. 안주하는 예술, 담론을 끌어내지 못하는 예술, 예술사를 바꾸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닙니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누그러질 때까지 이어진 점심 식사에서 접한 브네는 이렇게 자신의 예술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유쾌한 농담을 좋아하고, 이방인을 식탁으로 초대하는 넉넉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예술가였다. 올해로 칠순이 넘었지만 “지금이야말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때”라고 말하는 이 예술가는 베르사유궁에서의 전시 개막 이후 더욱 바쁜 작가가 되었다. 제프 쿤스, 자비에 베이영,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에 이은 브네의 베르사유궁 전시는 그동안의 전시에 비해 가장 반발이 적은 전시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의 작품이 영구적으로 설치되기를 바라는 프랑스인들이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고풍스러운 베르사유궁에서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반대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루이 14세 동상 옆에 아치 모양의 철 조각 작품을 설치하는 그에게 베르사유 토박이 한 노부인이 다가와서 “어디 감히 루이 14세의 동상 옆에 흉측한 현대미술 작품을 설치하느냐?” 라면서 철거를 요구해왔다고 한다. 그 노부인에게 브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부인, 그럼 부인이 타고 오신 저 흉측한 현대물인 자동차부터 버리고 마차를 타고 오셨어야죠. 그리고 지금 입고 계신 그 현대 의상은 무엇인지요? 루이 14세 시대의 의상을 입고 다니셔야 하지 않나요?”
올 11월 1일까지 브네의 작품들을 베르사유궁에서 만날 수 있다.


최선희씨는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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