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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을 위한 변명

중앙선데이 2011.08.21 00:02 232호 2면 지면보기
재벌이 동네북 신세다. 모두 다 재벌 탓이다.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건 재벌이 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이 힘든 건 재벌이 빵집과 식당을 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도, 실업률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10%도 안 되는 지분으로 100%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도, 막대한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하지 않는 것도, 막대한 재산은 사회에 기부하지 않으면서 세금 인하만 요구하는 것도 재벌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이런 여론이 그대로 반영된 게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와 청문회다. 재벌 오너들이 호되게 당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먹통’ 소리를 들었고,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악덕 기업인이 됐다. 재벌은 야수·공룡·악질과 동의어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재벌규제 법안은 무사 통과다. 지난 3월 질질 끌던 상법 개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된 까닭이다. 이 법엔 ‘회사 기회 유용 금지’나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 강화’ 등 요상한 이름의 규제가 들어 있다. 문제가 상당히 많은데도 편법 상속을 막는다는 취지로 통과됐다.

압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공생 발전이다. 재벌에 대한 강한 질타였다. 탐욕경영, 자본의 자유, 부익부 빈익빈이라 표현했다. 이를 윤리경영, 책임경영, 상생번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재벌개혁 신호탄이다.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분명치 않지만, 재벌이 바짝 긴장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가 차기 정권까지 이어질 건 불문가지다.

과거의 재벌 정책이 늘 그랬다. 여론이 반(反)재벌로 돌아서면 정부는 여지없이 재벌 규제였다. 반재벌 여론이 비등해지는 것 역시 경제가 어려워질 때였다. 외환위기 직후 DJ의 재벌개혁이 단적인 예다. 재벌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재벌 해체론’이 등장했다, 정부가 강력한 규제정책을 펼 수 있었던 배경이다. ‘5+3’ 정책이 나왔다. 오너경영과 그룹 경영 모두를 강하게 규제했다. 사외이사 등 지배구조를 확 바꿨고 오너의 경영 책임도 강조했다. 내부거래, 상호출자, 상호채무보증 등을 규제하거나 금지했다. 부채비율도 200%로 묶었다. 그렇게 하면 어떤 효과가 날지 제대로 된 검증이 있을 리 없었다. 재벌을 규제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통과시켰고 시행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론을 등에 업고 새로운 규제들이 쏟아질 게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욱 심할 것이다. 하긴 이미 시작됐다.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재벌에게 두고두고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발표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방안 역시 정부는 밀어붙일 참이다. 위헌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동반성장정책도 진작 탄력을 받았다. 대형 마트의 골목길 진출은 막혔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도입됐다. 논란이 많던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이익공유제 등도 그대로 시행될 참이다.

재벌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마녀사냥식이어선 안 된다는 걸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비판하더라도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가령 한진중공업 오너를 비판하는 대목에는 배당 부분도 있다. 정리해고를 발표한 다음날 주주들에게 174억원의 배당을 했다는 것이다. 김황식 국무총리조차 “말이 안 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오너는 이득을 보면서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취지였다. 터무니없는 비난이다. 배당했다고 주주들이 혜택 보는 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배당하면 그만큼 주가가 떨어진다는 건 기초 상식이다. 배당락이 바로 그 얘기다. 이런 식의 무분별한 비판이 횡행해선 안 된다. 하물며 재벌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해서야. 이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정부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무분별하고 검증되지 않은 여론을 등에 업고 정책과 법안을 만들어선 안 된다. 재벌의 공과(功過)를 같이 인식하는,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 경제정책이 여론에 휘둘리면 그 칼날은 부메랑처럼 국민경제에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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