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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세 가지 미스매치가 전세대란 불렀다

중앙일보 2011.08.18 00:08 경제 2면 지면보기
영화 해운대·퀵 등에서 톡톡 튀는 연기로 인기를 모은 영화배우 김인권씨. 아내와 함께 경기도 분당에서 세 딸을 키우고 있는 그는 최근 한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영화 말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김씨는 “내년 1월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데 집주인이 벌써부터 이사 여부를 물어보고 있다”며 “아무래도 집을 비워줘야 할 것 같은데, 대체 어디로 이사 가야 하느냐며 아내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월세 시장 어긋난 수요 vs 공급

 유명 연예인조차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전셋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17일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8%를 기록했다. 2002년(10.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상승률(7.1%)을 불과 7개월 만에 넘어선 것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연간 상승률은 13.7%로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셋값은 2009년 2월 이후 29개월 연속 상승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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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 2억6000만원 하던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6단지 113㎡형 전세는 현재 4억원을 호가한다. 학군 수요가 많은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5단지는 1800여 가구에 달하지만 현재 시장에 나온 전세 물건이 10가구 정도밖에 없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을지공인 서재필 사장은 “전세 물건 자체가 없어 호가(부르는 값)가 그대로 시세가 된다”고 말했다.



 전셋값 급등의 원인은 간단하다. 전세 공급물량보다 수요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가 과거와 달라진 전세시장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세 가지 미스매치’된 처방을 내놓은 바람에 전세대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국대 부동산학과 김호철 교수는 “정부가 너무 포괄적인 전세대책을 내놓다 보니 평형·지역·시기의 세 가지 미스매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첫째 미스매치는 평형이다. 통계를 보면 주택보급률은 올라가고 있고 미분양 주택은 쌓여 있다. 전세 공급물량이 넘쳐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원인은 미분양 주택 대부분이 중대형이기 때문이다. 정작 집 없는 서민들이 원하는 소형(전용 85㎡ 이하) 매물은 크게 부족한 ‘평형 미스매치’가 생긴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6월 현재 수도권의 중대형(전용 85㎡ 초과) 미분양 주택 수는 1만8362가구로 수도권 전체 미분양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형 건설업체 임원은 “건설업체들이 중소형보다 상대적으로 이윤이 많이 남는 중대형에 집중한 때문”이라며 “정부에서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2인 가구의 증가세를 간과한 점도 문제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에 따르면 2007년 당시 통계청은 2010년 우리나라의 1~2인 가구수가 743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2010년 1~2인 가구수는 824만 가구나 됐다. 최 의원은 “국토부가 2007년 예측치를 토대로 주택보급률을 산정하고 정책을 입안하다 보니, 1~2인 가구를 겨냥한 소형주택 공급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지역 미스매치’다. 전세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은 수도권이다. 전국적으로 입주물량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수도권의 입주물량 감소폭이 지방보다 더 가파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11만3309가구가 공급됐던 경기도의 올해 입주물량은 5만174가구로 55.7%나 감소했다. 반면 지방은 12만6933가구에서 8만3649가구로 34.1% 줄 것으로 예상됐다.



 나비에셋 곽창석 대표는 “올해 수도권 입주물량은 김포·동탄·운정 등 2기 신도시에 집중돼 있다”며 “모두 서울 도심에서 25㎞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전셋집을 여기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시기 미스매치’다.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이주 시기를 제대로 집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8년 총선에서 쏟아진 ‘뉴타운 공약’으로 인해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이에 따라 서울의 멸실주택 수는 ▶2008년 1만8068가구 ▶2009년 2만3647가구 ▶2010년 5만8683가구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은 ▶2008년 4만8417가구 ▶2009년 3만6090가구 ▶2010년 4만3884가구다. 입주까지 3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시기적으로 ‘미스매치’인 셈이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는 서울지역 재건축·재개발사업지에서 1만6000여 가구에 달하는 원주민 이주가 진행되면서 가을 ‘전세대란’ 우려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최근 전세대란은 인구 구조 변화와 저금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주택 임대사업이 수익형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택바우처(일종의 주택임대료 보조제도)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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