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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DJ’ 이미지 구축 위해 어딜가든 경제, 경제…

중앙선데이 2011.08.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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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전 의원 金大中 이야기<24>]경제로 승부수 건 DJ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97년은 소의 해였다. 대권 4수생 DJ에겐 72세라는 나이로 보나 뭐로 보나 마지막 기회였다.







1997년 신년 여론조사 결과는 나빴다. DJ는 ‘인물론’을 앞세워 돌파할 작심을 했다. 1월 6일 72세 생일을 맞은 DJ는 서교성당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 장남 김홍일 의원과 함께 미사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당시 정초마다 거물 정치인들이 앞다퉈 휘호(揮毫)를 발표했다. 붓글씨로 멋지게 써서 자신의 의지와 결심을 알리는 일종의 ‘휘호정치’였다. YS(김영삼 대통령)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을 내걸었다. 집권 마지막 해니 이해가 가는 구절이었다. DJ는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정했다. 실질과 능률을 우선시한다는 것인데, 좀 더 솔직하게는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면 이념과 노선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JP(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예인(藝人)’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멋들어진 표현을 발굴해 냈다. 줄탁동기(<5550>啄同機), 그러니까 병아리가 부화될 때 어미 닭은 밖에서, 병아리는 안에서 서로 도와 껍데기를 쫀다는 뜻이다. 누가 들어도 JP가 DJ와 협조해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선언 같았다. DJ는 크게 기뻐했다.



1일 아침 국민회의 당사에서 단배식이 열렸다. 벽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우리는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절규에 가까운 절박함이 엿보였다. DJ는 플래카드 빈 공간에 ‘실사구시 김대중’이라고 썼다. 전쟁터에 나가는 마당에 참 싱겁고 뜬금 없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DJ의 심경을 그보다 더 정확히 드러내는 사자성어도 없었다. DJ가 새해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들이 꾼 꿈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경제를 세우고, 남북문제의 해결을 통해 민족의 미래를 여는 정권창출의 꿈일 것이다. 나는 중대한 각오와 만반의 준비를 갖고 여러분의 선두에 서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하겠다.”



DJ는 2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신년휴가를 떠났다. 강원도 설악산 설악파크 호텔로 대선 구상을 하러 간 것이다. 떠나기 전 국민회의 기조실에 새해 첫 번째 지시를 내렸다. “당 전체가 경제마인드를 갖도록 홍보대책을 마련하고 경제특별과외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DJ는 그해 대선에서 경제문제가 부상할 것이란 감을 잡고 있었다. DJ 입장에선 경제라면 얼마든지 해볼 만한 것이었다. 영남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내는 것보다는 훨씬 쉬웠다. 당 기조실은 DJ의 지시대로 경제 자료를 만들어 날마다 의원회관과 지구당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신문 경제기사를 요약해 붙이고 산업동향 해설 같은 걸 곁들인 것이다. 당원들이 먼저 경제를 알아야 유권자들과 만나 화제를 삼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목표는 국민회의는 경제대안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자료에는 DJ에 대한 홍보가 빠질 수 없었다. DJ가 20대 때는 사업을 하면서 실물경제를 체험했고, 40대에는 ‘대중참여 경제론’을 집필해 하버드대에서 출간했다는 내용이었다.



DJ 본인도 기자회견 때마다 “경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귀에 못이 박이게 반복했다. 달라진 건 재벌에 대한 태도였다. 과거에는 중소기업과 중산층에 대해서만 강조했지만 97년엔 한국 경제 발전에서 재벌이 한 역할도 인정하는 쪽으로 변했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지켜보며 세운 전략이다.



뭐든 계속 듣다 보면 나중엔 그런가 보다 믿게 되는 법이다. DJ가 집요하게 경제를 언급하자 서서히 ‘경제는 DJ’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이미지는 한보그룹 부도를 거치면서 굳어져 갔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으면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이 경제 브랜드야말로 DJ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신한국당 대선 예비주자인 이회창이나 박찬종 고문 같은 이들도 할 말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인 YS의 눈치를 봐서라도 대놓고 경제 비판을 할 처지가 못됐다. 아마 벙어리 냉가슴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게 다 ‘정치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97년 1월 DJ와 JP는 듣도 보도 못한 ‘생일 공조’를 했다. 1월 2일 JP의 71회 생신에 DJ가 청구동 자택으로 생일 축하 난을 보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6일은 DJ 생신이었는데 자민련 김광식 총무국장이 찾아왔다. JP가 보낸 난을 들고서였다. JP는 음력으로 생일을 쇠는데 공교롭게도 97년엔 DJ와 JP의 양력 생일 날짜가 나흘 밖에 차이가 안 났던 것이다.



나는 1월 7일 오후 5시쯤 마포 밤섬 아지트에서 DJ에게 여론조사 결과와 대책을 종합 보고했다. 신년 휴가를 가면서 DJ가 지시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선이 있는 해에는 모든 신문이 1월 1일자에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걸 분석해 전략을 세우란 거였다. 여론조사는 다 엇비슷했지만 특히 눈에 띄는 내용이 몇 가지 있었다.



동아일보는 신한국당 이회창·박찬종 중 한 사람과 DJP연합이 대결할 경우 DJP가 박빙 열세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신문은 특히 이수성 총리를 언급하면서 YS의 히든 카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문화일보의 경우 전문직 종사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 중 64%가 가장 시급한 국가 과제로 경제 문제를 꼽았다. 개혁·도덕·청렴성·통일·통합 등 여러 항목을 모두 앞선 것이다.



한국일보는 DJP가 단일후보를 낼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59.7%가 ‘힘들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뤄진다’는 16.0%, ‘두고 보자’가 24%였다. 이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DJP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도 이런 대답이 나온 것이 놀라웠다. 한술 더 뜨는 내용도 있었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누가 나서야 이길 거라고 보느냐”는 질문이었는데 DJ라는 대답이 33.1%, JP는 14.0%였다. 그런데 ‘제3의 인물’이라는 응답이 41.3%나 됐다. 정권교체는 하고 싶지만 DJ나 JP 대신 다른 사람이 나오란 얘기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럼 누가 제3의 인물이냐”라는 질문에 81.8%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조순·박찬종·김상현·정대철 등의 이름이 나왔지만 모두 1~3%대였다. DJ 입장에선 등골이 서늘해질 만한 내용이었다.



DJ에게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던 한겨레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2500명을 조사했는데 야권후보 단일화에 대해 별로 가능성 없다(44.1%), 절대 안 된다(28.3%), 가능성 있다(24.5%) 순이었다. 부정적인 대답을 합치면 72.4%니 결국 집권 불가능이란 얘기다.



경향신문 조사는 숨이 막혔다. 신한국당 지지자의 80.5%는 연말 대선에서 신한국당 후보가 이길 거라고 대답했다. 반면 국민회의 지지자의 대답은 ‘국민회의 승리’가 46.7%였고, ‘신한국당 승리’가 40.5%였다. 심지어 호남 유권자들은 국민회의 집권 가능성을 37.9%로 보면서 신한국당 승리 가능성은 39.0%라고 대답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표현이 딱 맞았다. 국민회의 지지자와 호남 유권자마저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데 어떻게 승리한단 말인가. 고통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어차피 마지막 승부였다. 어떻게 하든 수를 내야 했다. 각 신문의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니 ①이슈는 경제고 ②DJP가 승리하기 어렵다고 믿는 국민이 대다수며 ③JP 지지자 중에서 이탈이 심각해질 수 있고 ④야권의 제3후보를 원하지만 구체적 인물 대안은 없고 ⑤내각제보다 대통령제를 선호하며 ⑥20~30대와 호남에선 DJ 지지가 높다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자 DJ는 보고서를 읽으며 조용히 듣기만 했다. 물론 대안도 제시했다. 내가 말했다. “출마 후보 중에서 총재님의 경제지식이 가장 많다는 걸 최대한 부각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또 DJP연합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걸 집중적으로 홍보해야 합니다.” DJ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밖에도 ▶JP지지자들이 이탈하지 못하게 보수화 전략을 강화하고 ▶제3후보는 대안 없는 허구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젊은 유권자들과의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는 건의도 했다.



대책과 별도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기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하느냐는 것이었다. 불리한 여론은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냥 방치하면 여론이 예측한 대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날 나온 대책은 “부인하고 평가절하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장할 근거도 있었다. 95년 6·27 지방선거 때 모든 신문 여론조사는 무소속 박찬종 후보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했다. 결과는 국민회의 조순 후보의 승리였다. 이런 사례를 집중 부각해 제15대 대선 결과 역시 여론조사와는 다를 것임을 강조하기로 했다.



보고를 끝내자 DJ가 자신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라고 했다. DJ가 내세운 건 ‘인물론’이었다. 그걸로 돌파하자는 것이었다.



“다음 대선은 지역과 정파 대결의 장이 아니다. 누가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물인가, 21세기 새천년이 시작되는 세기적 전환기에 어떤 인물이 민족과 시대가 직면한 국가적 난세를 풀어갈 인물인가, 처음으로 국민이 바라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한국의 정치체제를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킬 상징적 인물이 누구인가, 남북 대결 시대를 종식시키고 한민족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사명의식을 가진 인물이 누구인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비전을 가진 인물이 누구인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한 인물이 누구인가.” 물론 이런 연속적인 질문들의 답은 DJ 자신이라는 뜻이었다. 미리 준비라도 한 듯 한달음에 자기 생각을 밝힌 DJ는 “앞으로 당에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라”고 지시했다. 나중에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터지면서 ‘경제+인물론’은 엄청난 효과를 봤다. 그건 DJ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미지 작품 중 하나였다.



정리=김종혁 중앙SUNDAY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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