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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김정은 그룹 외화벌이 챙기려 암투

중앙선데이 2011.08.14 02:15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사례1=20여 년간 북한과 중국 기업 간의 중개인을 해왔던 화교 최모(64)씨는 지난해 10월 북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과 중국 기업 간의 함경북도 무산 광산의 철광석 구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대풍그룹은 북한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곳이다. 보통의 경우 북한은 중국 기업과 계약이 성사되면 바로 물건을 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1년 가까이 지나도록 철광석을 안 보냈다. 최씨는 “무산 광산의 철광석에 대한 판매권이 조선합영투자위원회 등 북한의 다른 기관들도 가지고 있어 내부적으로 교통정리가 안 됐다는 해명을 대풍그룹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중국 같은 여러 국가에서 북한 지하자원에 눈독을 들이자 북한의 ‘힘’ 있는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해외 기업들과 손잡기 위해 자원 판매권을 가져가면서 빚어진 현상 같다”고 했다.

북한 자원개발 사업에 무슨 일이



#사례2=무산 광산과 인접한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의 화교 기업가인 판모(62)씨는 지난 3월 조선합영투자위원회와 무산의 철광석 판매 계약을 맺었다. 합영위원회도 북한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판씨가 합영위원회와 철광석의 판매 가격 문제로 이견을 보이면서 사업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중국의 다른 기업이 무산 철광석을 수입하는 소문을 듣고 판씨는 허룽시에 그 회사의 철광석이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요청했다. 판씨는 허룽시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했기 때문에 허룽시가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판씨는 “분쟁이 조정도 되기 전에 이전 계약을 무시하고 다른 기업과 사업하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북한에도 요청했다”고 말했다.



권력 이동 빨라지며 견제·경쟁 치열

최씨와 판씨는 “이는 모두 북한 내부의 대외투자 기관들 간의 경쟁과 견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권력이동이 빨라지면서 그룹별로 경쟁과 견제도 치열해지면서 이들에게 힘을 제공하는 ‘외화벌이’에도 갈등이 그대로 번지고 있다. 중국의 북한 관측통들은 현재 북한 내 그룹을 ▶김정일과 원로그룹 ▶김정은과 신진그룹 ▶장성택 그룹 ▶군부 그룹 등 크게 4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겉으론 김정일의 유일 통제지만 후계 체제 확립 과정에서 ‘실리적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 달라져 특히 올해 초부터 신경전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합영투자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원로그룹은 정권 유지비, 신진 그룹은 정권 이양비, 장성택 그룹은 ‘주택 10만 호’ 건설비, 군부는 군부 유지비 때문에 외화벌이에 열심이다. 그룹들은 각각의 외화벌이 회사를 전진배치하고 있다. 원로그룹은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김정은 그룹은 조선해양무역총회사, 장성택 그룹은 조선합영투자위원회, 군부는 조선승리무역회사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중국에 대한 지하자원 수출을 확대하면서 북한 기업들 간의 과열 경쟁에 따른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6월 8일 신의주 황금평에서 열린 경제특구 북·중 공동개발 착공식 장면. [단둥=연합뉴스]







최근 들어 힘겨루기가 치열한 곳이 지하자원이다. 유엔 제재로 정상적인 국제 교역이 막히면서 그나마 중국을 통한 지하자원의 수출은 이뤄지고 있다.



최근 중국 베이징으로 출장 나온 조선합영투자위원회(위원장 이수용) 관계자를 만난 화교 이모(43)씨는 “몇 년 전부터 북한 내에서 자력갱생이 부쩍 강화되면서 그룹별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자원을 판매하는 데 열을 올리면서 내부적으로 갈등이 벌어졌는데 요즘 특히 심해졌다”고 했다. 특히 무산 광산이 대표적인 각축장이다. 무산광산 혼선도 네 회사가 모두 판매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 광산이 각축의 현장이 된 것은 이 광산이 아시아 최대 노천 철광산이기 때문이다. 그냥 가서 캐면 돼 경제성이 높다. 추정 매장량은 50억t. 이 가운데 가채 매장량은 22억t 정도에 달한다. 해외기업이 주목하며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 지방 정부와 기업들이 관심이 많다. 한국도 포스코와 계약도 맺었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발표된 5·24 조치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룹 소속 회사들이 서로 판매권을 가지려고 경쟁이 치열해 철광석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신용도 잃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희토류 판매권 놓고도 각축전

무산 광산뿐만 아니라 지난해 중국과 일본이 희토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자 북한도 희토류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 희토류가 2000만t이 매장돼 있다고 알려지면서 해외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화교 이씨는 “희토류도 판매권을 놓고 대외투자를 담당하는 기관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무산 광산의 철광석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힘’으로 누르는 데 따른 불만이 없을 수 없다. 판매권 승인 담당 기관인 금속공업성 관계자를 만난 판씨는 “여러 높은 곳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판매권을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죽을 노릇이라더라”며 “지하자원 수출을 맡겠다는 기구가 중복적으로 자꾸 생겨 실무자들은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 판매 대금은 물론 금속공업성을 거치지 않고 그룹별 기업을 통해 상부로 올라간다. 국가 재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씨는 “북한과 20여 년간 사업을 하면서 절차적으로 혼선을 빚어 일이 늦게 진행되는 경우는 잦아도 이렇게 북한 내 기업들이 이권을 놓고 싸우는 바람에 지연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각의 견제를 받는 현상도 벌어진다. 지난 6월 8~9일 진행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와 나선경제무역지대 착공식에 북한의 육해운성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도로·항구 건설 같은 프로젝트가 들어 있는 이 사업엔 당연히 북한의 육해운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예 빠져 있기 때문이다. 착공식은 조선합영투자위원회가 주도했다. 북한 사업을 10여 년 해 온 화교 최모(48)씨는 “육해운성은 합영투자위원회를 불신한다. 이수용 위원장이 오랜 외국 생활로 국내 기반이 약하며 북한 실정을 잘 몰라 업무 조율을 제대로 못한다는 게 불만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30년간 스위스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초 귀임했다. 이 위원장은 대사 시절 스위스 베른의 헤스구트 공립학교에 유학 중인 김정은 부위원장을 돌봐 주기도 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은 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주도권 싸움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으며, 과거보다 시장의 기능이 커지면서 ‘힘’ 있는 기업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성규·고수석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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