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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의 은밀한 생존법

중앙선데이 2011.08.14 01:58 231호 10면 지면보기
나는 악셀 하케와 조반니 디 로렌초가 지은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의 121쪽을 읽다가 비로소 김 부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원래 회사 11층 탕비실 청소는 고객만족팀에서 정한 순서에 따라 날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한다. 차례도 아닌데 탕비실에서 정리정돈을 하거나 행주로 싱크대를 닦고 있는 김 부장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부장님, 오늘 당번이세요?” 내가 아는 체라도 하면 그는 몰래 나쁜 짓 하다 들킨 아이처럼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기 일쑤다. 허둥대긴 해도 그는 하던 청소를 마저 하고는 익숙한 솜씨로 행주까지 빨아 널어놓는 것이다. 나는 김 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그의 취미가 청소나 정리정돈인 것일까?

김 부장은 12층 고객상담실에서도 자주 목격됐다. 예쁘고 일 잘하는 안내 담당 직원이 두 사람이나 있어 상담실은 늘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다. 설령 김 부장의 취미가 청소나 정리정돈이라 해도 그것을 발휘할 기회가 이곳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보았다. 15개나 되는 상담실을 둘러보며 이미 정돈되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공연히 약간 옮겼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김 부장을. 또 나는 보았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쓰레기라도 줍는 것처럼 몸을 굽히고 손을 뻗어 허공을 집어올리는 김 부장을. 나는 김 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새로 만든 요가 동작이라도 하는 것일까?

내가 다니는 곳은 결혼정보회사라서 토요일이 가장 분주하다.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직장인이라 직장이 쉬는 토요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피크 때는 12층 상담실은 물론이고 16층과 11층 공간을 모두 활용해도 상담 공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렇게 고객이 몰려오니 토요일 안내 데스크는 정신 없이 바쁘다. 그렇게 바쁜 토요일 낮 12시에서 2시 사이 안내 데스크에서 얼쩡거리는 김 부장을 나는 자주 보았다. 손도 느리고 눈치도 없는 그가 안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바쁜 일손을 덜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혼선을 빚고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첫인상은 다소 험악해 웃는 모습이라 해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나는 김 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그는 자신이 안내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하케와 로렌초의 책 121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특히 미래가 걱정되거나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할 날이 올까 봐 걱정이 될 때, 나는 평상시보다 더 꼼꼼하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다.” 그렇다. 김 부장은 안정을 찾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회사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점점 나이는 들어가는데 곧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거라는 우울한 예감이 몰려올 때마다 그는 안정을 찾기 위해 탕비실을 청소하고 상담실을 둘러보고 토요일 낮 두 시간 동안 안내 데스크에서 얼쩡거리는 것이다. 그 순간만이라도 뭔가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참, 독일에서 공부한 후배 연우에게 들으니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의 독일어 원제는 ‘당신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라고 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을까? 김 부장은, 그러니까 나는?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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