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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건 모두 돌아 앉은 세상...고단한 청춘들, 바다에 빠지다

중앙선데이 2011.08.14 01:57 231호 10면 지면보기
서울 촌닭’으로 자라 스무 살이 훨씬 넘어서야 비로소 가본 동해바다는 경이로웠다. 저 멀리 바닷물이 하얀 거품을 일으키다가 마치 횡대로 열을 지어 몰려오는 흰옷의 사람들처럼 해안가로 일제히 달려오는 그 경이로운 풍경은, 오랫동안 동해에 대한 나의 인상을 좌우했다.
바다는 이렇게 신비로운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도 아니고,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정말 멀고 먼 길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동해바다는 신비한 이미지로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그러니 ‘바보들의 행진’의 ‘젊은 바보’가 고래를 잡겠다고 동해로 향했을 것이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22> 순수의 바다와 고래인어 


“1.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2.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3.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 모두들 가슴 속에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송창식(사진)의 ‘고래사냥’, 1975, 최인호 작사, 송창식 작곡)

맑은 동해와 그 속에 산다는 고래, 이것들이 상징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고래는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신화’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동해에서 산다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어벙한 대학생 영철은 자전거를 타고 동해로 간다. 영철은 공부도 못하고 소심하고 말까지 더듬는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며 자수성가하여 살아남은 강인한 아버지가 보기에 도대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순수한 머리와 가슴을 지녔다. 아주 전형적인 청년문화적인 구도다. 이 시대 대학생들에게 기성세대는, “어미 아비가 뼈빠지게 등록금 대줬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날 데모질·연애질에, 술 퍼먹고 고고춤 추는 게 다냐?”고 늘 야단을 쳤지만, 이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모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술 먹고 춤춘다고 이들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 속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 ‘순수’를 찾으러 이들은 동해로 간다. 그것도 부유하고 화려하지 않은 방법으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영화 속의 영철은 동해바다를 만나고 오래간만에 활짝 웃고 환희에 넘쳐 소리친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투신자살한다. 순수의 표징인 동해와 고래가 그저 상징일 뿐,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극적 처리였다.

1970년대 초의 포크에서 바다를 이렇게, 타락한 인간세상과는 무관한 신비롭고 순수한 공간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꽤 여러 편이다. 대중가요로서는 매우 드물게 ‘인어’가 등장하는 노래가 두 편이나 히트한 것도 이 시기였다.

“1. 노을빛이 물드는 바닷가에서 / 금빛 머리 쓰다듬던 어떤 소녀가 / 울먹이는 가슴을 물에 던지며 / 그리운 그 사람을 기다리다가 / 인어가 되었다네 꿈이 변하여 / 인어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허림의 ‘인어 이야기’, 1974, 박건호 작사, 김기웅 작곡)

지금의 감각으로는 다소 머쓱하다. ‘초딩’도 아니고 다 큰 청년들이 웬 인어 타령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시대는 이런 소녀 취향이 호소력을 발휘하던 때였다. 영원한 사랑과 그 순수함과 진실함이 마치 증류수처럼 응결된 인어라는 존재를 그려내는 상상력이 통했었다.

선율의 일부가 존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River in the pines)’를 연상시키는데, 허림의 목소리조차 존 바에즈 판박이다. 1980년대 최고의 히트제조기로 통하던 작사가 박건호의 초기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 박건호는 ‘모닥불’과 ‘인어 이야기’를 작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사가의 길로 들어섰고, 80년대에는 ‘아, 대한민국’ 같은 건전가요를 주문받을 정도로 유명 작사가가 되었다.

김민기보다 한 해 선배인데도 또래들보다 뒤늦게 대중가요 판에 들어온 이정선의 ‘섬 소년’도 이런 부류의 노래다. 그는 첫 시작부터 별것도 아닌 가사가 검열에 걸려 1집을 몇 번씩 다시 내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이 노래의 히트 덕분에 대중가요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살아남아 해바라기부터 신촌블루스까지 70~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묵직한 인물로 성장했다. ‘소년’과 ‘인어’의 조합이 가져온 신비로운 분위기가 세긴 셌던 모양이다.

“1. 외딴 파도 위 조그만 섬마을 소년은 언제나 바다를 보았네 / 바다 저 멀리 갈매기 날으면 소년은 꿈속의 공주를 불렀네 / 파도야 말해주렴 바다 속 꿈나라를 / 파도야 말해주렴 기다리는 소년 음

2. 어느 바람이 부는 날 저녁에 어여쁜 인어가 소년을 찾았네 / 마을사람이 온 섬을 뒤져도 소년은 벌써 보이지 않았네 / 파도야 말해주렴 바다 속 꿈나라를 / 파도야 말해주렴 그 소년은 어디에”(이정선의 ‘섬 소년’, 1975, 이정선 작사·작곡)

이 노래의 전주와 간주는, 기타와 현악기로 잔잔한 파도를 청각적으로 묘사한 탁월한 선율과 연주를 보여준다. 80년대 기타교본을 내어 ‘사천만의 기타 선생님’이 된 그의 음악적 역량이 성심성의껏 발휘된 구절이었다. 혹시라도 꿈속 같은 말랑한 분위기만 기억난다면 다시 옛 음반의 먼지를 털어내고 들어볼 일이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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