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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제자 성희롱? 미국선 학교에도 거액 배상 책임

중앙선데이 2011.08.14 01:54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2>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제자

예쁘고 재능 있는 열여덟 시골 처녀 카미유 클로델에게 갑자기 행복의 문이 활짝 열린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조각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클로델은 실력을 바탕으로 온갖 편견과 차별을 넘어 마침내 조각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며 거장인 오귀스트 로댕의 조수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이제 조각가로서 영광스럽고 보장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카미유 클로델‘성숙의 시기’



예상했던 대로 클로델은 천재 조각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럽 미술계에 화려하게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그녀의 앞길에는 영원한 지옥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의 유부남 로댕과의 길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로댕은 40대 중반으로 이미 처자가 있었다. 나이 차도 20년이 훨씬 넘었다. 처음에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연인 사이가 됐다.



로댕과 클로델은 정말 서로 사랑한 것일까? 아니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이용한 것일까? 진실은 알 수 없다. 어쩌면 스승에 대한 존경과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그만 선을 넘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스승과 학생 사이의 로맨스는 미술계에서 종종 일어난다.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미술교육 과정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끈끈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제자가 앞으로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스승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스승의 권위에 따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우월한 지위를 가진 스승이나 교수의 행동에 따라 로맨스나 성희롱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관례상 감춰 오던 성희롱 문제가 터지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유명 미술대학에서 관례처럼 교수가 학생을 빈번하게 성희롱해 온 일이 언론에 폭로됐다. 또 미주리대에서는 미대 교수가 박사 과정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하다가 마침내 해임되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미술대학에서는 저명한 교수들이 상습적으로 남학생과 여학생들을 성희롱해 온 것이 드러나 큰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이 자기 장래를 위해 참게 마련이고 설사 학생들이 정식으로 문제 삼더라도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조용히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며 따돌림받는 경우조차 있다.



이런 문제로 골치를 앓던 미국 사회는 1972년 마침내 프랭클린 판결을 통해 교수들 개인의 책임뿐만 아니라 학교도 관리 소홀 책임이 있으므로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자 거액의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미국 학교들은 교수의 선발 과정과 학생지도 방식에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성희롱 문제가 흔하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나라의 미술대학에서도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교내 성희롱 문제가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이러한 교내 성희롱 문제를 방지하려면 가해자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하는 동시에 교수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교육상 빈번하게 신체적 접촉이 이뤄지는 예술 분야에서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성희롱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 성희롱이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해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것을 성희롱이라 보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하는 행동도 상대방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평소에 못마땅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혹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있지도 않은 성희롱을 조작하는 사례도 있으므로 억울하게 비난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저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극복한 듯했던 클로델의 사랑은 어떻게 됐을까? 그들의 위험한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로댕에게 걸었던 클로델은 빛나는 젊음이 지난 뒤 로댕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았다. 그 후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가난과 함께 스승을 유혹한 부도덕한 여자, 로댕의 아이디어를 훔친 여자라는 사회의 비난과 지탄뿐이었다.



클로델은 점차 심각한 정신병 증상을 보이게 돼 결국 정신병원에서 남은 30년의 인생을 보냈다. 클로델의 몰락과 함께 그의 가족들도 모두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딸이 로댕과 그런 관계가 돼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비관하고 집을 나갔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딸을 믿고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던 클로델의 아버지는 완전히 피폐해진 딸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을 기다리다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딸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 오늘날에도 로댕은 영광과 찬사를 받고 있지만 나는 로댕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의 빛나는 인생의 그늘에서 불행하게 사라진 클로델과 그 가족들이 생각난다.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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