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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현실이라는 건 알고 보면 백인 남성들의 현실일 뿐

중앙선데이 2011.08.14 01:36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22> 『게릴라 걸스의 서양미술사』『여성, 미술, 사회 : 중세부터 현대까지 여성 미술의 역사』

“소는 누가 키우나?” 모 인기 개그프로그램의 대사다. 여성 대표가 논리적으로 따지자 궁지에 몰린 남성 대표가 던지는 말이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나름 의표를 찌른다. 그는 여성 대표가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꼭 필요하지만 귀찮고, 표 안 나는 일을 여자들이 안 하면 누가 하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3 게릴라걸스, 39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는가39 (1989)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에도 여성과 남성에 대한 해묵은 관념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관념은 매우 느리게 변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좀 당해봐야 관념이라는 것은 비로소 바뀌는 법이다. 일군의 행동가들(activists)은 이런 관념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존재한다.



게릴라 걸들은 해롭지 않은 말썽을 일으키는 행동가다. 고릴라 탈을 뒤집어 쓴 이들은 1985년 뉴욕 소호에서 포스터를 붙이면서 등장했다. 철저하게 익명을 유지하는 이들은 퍼포먼스, 강의, 포스터 작업, 출판,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전방위적인 종합예술인이다. 그들 중에는 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연 작가부터 이제 막 데뷔한 작가까지 다양한 층이 존재한다. 포스터 제작 외에도 시위, 편지 쓰기 등으로 자신들의 뜻을 알린다. 평론가·큐레이터·딜러·컬렉터 등 차별적인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타깃이다.



그들의 주요한 무기는 유머와 통계다. 유머는 페미니스트들이 전투적이고 고집 세고 우울하다는 이미지를 가뿐하게 털어버리게 하고,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대표작은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의 몸에 성난 고릴라 얼굴을 붙이고 그 위에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미국 최대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미술 부분에 여성 미술가의 작품은 5%밖에 되지 않지만, 이 미술관의 누드화는 85%가 여자다"라는 문구를 붙인 것이다. 유머와 통계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뉴욕의 주요 갤러리 전속 작가, 주요 미술관 소장품에 관한 통계는 미술계가 압도적으로 백인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게릴라 걸들은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 남성 예술가들이 단순히 실력이 뛰어나 좋은 기회를 얻고 대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성 예술가들과 유색인종 예술가들, 성적 소수자들이 전시 기회조차 얻기 힘든 현실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 예술가들이 많이 종사했던 판화, 그래픽 같은 장르와 자수 같은 응용예술을 낮게 보는 풍토, 미술에 대한 가치 평가 자체도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미술사에 개입해 낸 성과물이 『게릴라 걸스의 서양미술사』(마음산책, 2010)다. 이 책은 기존의 여성 중심 미술사에 비해 내용적으로 새로울 것은 별로 없다. 두껍고 권위에 찬 미술사를 그들의 무기인 ‘유머’로 재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재치 있는 편집으로 유명한 남성 지식인들이 내뱉은 여성에 관한 망언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한때는 사람들의 관념을 지배하는 권위 있는 발언이었으나 이 책에서는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페미니즘 미술은 1971년 1월 ‘아트뉴스’지에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게릴라 걸들의 미술사는 이렇게 바꿔 질문한다. “왜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은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았는가?”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존재는 했지만,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조건을 함께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게릴라 걸스의 서양미술사』를 간단한 애피타이저처럼 즐기고, 무게 있는 본요리를 즐기겠다면 휘트니 채드윅의 『여성, 미술, 사회:중세부터 현대까지 여성 미술의 역사』(시공사, 2006)를 읽는 것이 좋다. 90년 초판이 나오고 2002년 개정 증보판이 나온 이 책은 65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웬만한 서양미술사책을 능가한다. 페미니즘 미술 논의가 시작된 후 20년 만에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예술가들을 발굴해낸 학문적 성과다. 앙귀솔라, 라비니아 폰타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리스키, 카미유 클로델, 그웬 존 등 일반 서양미술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여성 예술가의 이름과 업적을 볼 수 있다. 역경을 이겨내고 예술가로서의 존엄을 지켜낸 그들의 삶은 위대한 인간을 느끼게 한다.



70년대 시작된 페미니즘 미술운동은 우선은 미술사 연구에 ‘여성주의’ 관점을 도입해 여성 예술가들을 재평가함으로써 미술사의 영역을 확대했다. 더 나아가 해체철학의 여러 담론을 흡수하면서 학계가 전통적으로 고수해오던 미적 가치의 평가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페미니즘 논의는 “모더니즘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무너뜨리는 데 일정 역할을 수행”했으며, 역으로 이러한 변혁의 혜택을 입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론은 역사 속의 미디어가 여성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비판과, 지배 세력이 이 이미지를 이용해 어떻게 권력과 소유의 구조를 강화하는지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내는 이론적 힘을 제공했다.



더 나아가 여성과 소수집단(성적, 인종적)의 위치를 가부장적 문화 속의 ‘타자’로 정립함으로써 가부장적 질서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단순히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립시키는 부정적인 전략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라는 능동적인 전략으로 나아가게 된다. 휘트니 채드윅의 책은 이러한 이론적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개정판에서는 더 많은 아시아·남미·아프리카계의 여성 예술가들을 언급한다. 한국 작가로는 윤석남·김수자·이불 등이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상황은 좋아진 듯하다. 게릴라 걸들도 이것은 인정한다. “많은 사람이 객관적인 현실이라 배운 것이 사실은 백인 남성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 변화에 그들이 기여했음을 자부한다.



그러나 변화는 느리다. 뉴욕의 백인 남성 중심으로 제도화된 미술계는 여전히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다. 게릴라 걸들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책은 게릴라들답게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으로 끝난다. “우리는 계속해서 권력자들을 밝히고 조롱하고, 여성 혐오자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끌어내려, 발길질하고 소리치며 다음 세기까지 나아갈 것이다.” 각국의 뜻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함께할 것을 권유한다. 차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편지를 쓰고, 포스터를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자!”라고.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술의 빅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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