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北島<북도>

중앙선데이 2011.08.14 00:21 231호 27면 지면보기
경(京)은 높은 곳에 위치한 누각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이런 자형에서 나라의 수도라는 뜻이 나왔다. 북쪽에 자리한 수도 북경(北京)의 한복판에 천안문(天安門)이 처음 세워진 건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때인 1420년. 당시엔 승천문(承天門)으로 불렸다. 하늘의 뜻을 받아 운(運)을 연다(承天啓運)는 뜻이 담겼다. 몇 차례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청나라 순치제(順治帝) 때인 1651년 천안문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천명을 받아(受命於天)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고 민심을 안정시킨다(安邦治國)는 뜻이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을 선포한 이래 천안문은 중국 정치의 중심이 됐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비열함은 비열한 사람의 통행증(卑鄙是卑鄙者的通行證), 고상함은 고상한 사람의 묘비명(高尙是高尙者的墓誌銘). 자 봐라, 저 도금된 하늘에는(看<5427>, 在那鍍金的天空中) 죽은 자들의 거꾸로 비틀린 그림자가 가득 휘날린다(飄滿了死者彎曲的倒影)…. 너에게 고하노니 세계여(告訴<4F60><5427> 世界) 나는-믿지-않아!(我-不-相-信)! 너의 발 아래 1000명의 도전자가 있었다 할지라도(縱使<4F60>脚下有一千名挑戰者) 그렇다면 나를 1001번째 도전자로 삼아다오(那就把我算作第一千零一名)….’

76년 봄 4인방(四人幇) 타도를 외치는 피 끓는 중국의 청춘들을 천안문 광장으로 달려가게 한 시 ‘대답(回答)’이다. 89년 천안문 사태 때도 중국의 젊은 영혼들은 ‘대답’을 노래하며 민주화를 외쳤다. 이 시를 지은 베이다오(北島:본명 趙振開·62)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유럽을 돌며 망명 생활 중이다. ‘중국의 솔제니친’이라고 불리며 90년부터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에게 입국이 허용됐던 건 2001년 부친상을 당했을 때 며칠뿐이었다. 필명 베이다오는 ‘북쪽 바다에 있는 침묵의 섬’이라는 뜻. 그러나 22년간의 망명 생활 탓에 이젠 ‘표류하는 섬’이 됐다고 그는 자조했다.

베이다오의 중국 입국이 최근 허용됐다. 중국작가협회 주석이 보증을 섰다고 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세월이 가면 미움도 사랑도 다 추억이 될 뿐이다. 중국이 대표적 저항시인을 포용할 정도로 성장한 것인지, 한낱 정치적 제스처인지 궁금하다. 전자이기를 바란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