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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논쟁 ‘PAYGO’로 결정하자

중앙선데이 2011.08.14 00:14 231호 30면 지면보기
서울에서 살려면 심장이 튼튼해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깜짝 뉴스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위 날릴 공포 영화를 안 봐도 매일매일 서늘하다. 올여름도 예외가 아니다. 100년 만의 물난리에 산사태로 겁먹은 마음인데 서해에선 남북 간에 포사격이 오갔다. 주가와 원화 등락은 에버랜드의 T 익스프레스를 닮았다. 가뜩이나 오르지 않은 게 월급뿐인 팍팍한 생활이다. 그런데도 경제 추위는 이제 시작이란다.

최상연 칼럼

내성 탓인지 그런 이슈가 오래 가지도 않는다. 짜릿한 후속타가 없으면 눈과 귀에서 쉽게 멀어진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딱 그런 모습이다. 반값 등록금과 무상 시리즈는 장마 전 펄펄 끓는 이슈였다. 제2의 촛불 사태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열흘 앞으로 다가온 무상급식 투표는 분위기가 영 뜨질 않는다. 유효 투표율 33.3% 달성이 힘겹다는 사람이 많다.

팽팽하게 의견이 갈린 이번 투표는 많은 사람이 결판을 알고 싶은 주제를 놓고 실시 된다. 어느 쪽이든 의미가 크다. 복지 포퓰리즘을 집어치우라는 비판이든, 무상 급식이든, 시민들의 뜻이 뭔지 서로서로 눈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투표 결과는 서울시 학교 급식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 전체의 복지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나침반이다. 복지 논란의 종결자가 될 수 있단 얘기다. 가뜩이나 복지 포퓰리즘 공약이 쏟아질 총선과 대선이 코앞인 마당이다.

나침반을 보려면 유효 투표가 나와야 하는데 시민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렇다고 여당과 야당이 북이든 장구든 들고 나와 손님을 모으는 것도 아니다. 오리려 김을 빼는 데 힘을 쓴다. 투표를 보이콧하겠다는 야당은 오세훈 서울시장 공격이 유일한 전략이다. 그들에게 투표는 이미 정책이 아닌 정치 투표다. 한나라당엔 지금 이 시간에도 “오 시장이 똥볼 찾다. 하루빨리 퇴로 찾자”는 의원이 수두룩하다. 원내대표가 ‘무상 보육’을 외치는 마당이다.

다음 주 주민투표의 의미는 작지 않다. 투표가 끝나면 오 시장에 대한 거취 공방으로 가을 정국은 뜨끈해질 게 뻔하다. 산전·수전·공중전에 육박전으로 이어지는 게 우리나라 투표 결과다. 문제는 복지 논란을 잠재우는 쪽으로 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서늘한 투표 분위기가 걸림돌이다. 여·야당이 맞설 때 재·보선 투표율이 통상 30% 남짓이다. 지난해 오 시장 득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20%를 웃돌았다. 시장직을 걸어 투표율이 올랐다 치자. 그러면 그게 복지 투표인가. 그렇다면 무상 시리즈는?

결판이 안 나도 다음 달 예산 국회엔 좋은 답이 있다. 팽팽한 양쪽 주장을 모두 채택하면 된다. 급식이든 보육이든 무상으로 가자. 다만 국가 부채를 늘리지 말자는 걱정도 함께 받아 들이자. 이런 예산 편성이 실제로 있었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수입·지출 균형 예산제(PAYGO)’다. PAYGO란 ‘Pay As You Go’의 줄임말이다. 미국 술집에선 종종 볼 수 있는데 나갈 때 돈 내란 뜻이다. 정부엔 예산을 미리 앞당겨 쓰거나 적자 지출 하지 말란 의미로 쓰인다. 새 입법으로 지출이 늘어나면 반드시 이에 대응해 세입을 늘리거나 다른 지출을 줄여야 한다. 클린턴 정부가 PAYGO 원칙으로 물가를 잡고 재정을 안정시켰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재정 지출이 커진 부시 정부는 PAYGO 원칙을 없앴지만 오바마 정부가 지난해 초 이 원칙을 부활시켰다.

재정 건전성 외에 예산 낭비를 막는 장점이 있다. 1969년 미국에선 국립공원 예산이 삭감되자 공무원들은 행정비용을 줄이는 대신 워싱턴 기념탑의 일반 관람을 중지해 버렸다. 공무원들의 이런 시위성 예산 집행을 워싱턴 기념탑 전술이라고 부른다. PAYGO 원칙 앞엔 즉각 브레이크가 걸린다.

무상 급식만이 아니다. 합의만 보면 보육이든 교육이든 의료든 모두 당장 무상으로 실시할 수 있다. 그런 나라를 외면할 사람은 없다. 다만 나랏빚 내서 하지 말고 깎아낸 만큼의 다른 예산이 있을 때 하자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없을 것 아닌가. 어떤 사업을 털어내느냐는 것은 물론 국회의 권한이다. 아마도 지역구 의원들의 지역 사업 예산은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르겠지만 말이다.

공무원에게 월급조차 못 주는 지방 정부가 우리나라에도 여럿이다. 게다가 우리는 고령화에, 통일비용에 돈 쓸 일이 태산이다. 통일되면 매년 50조원 이상의 돈이 든다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추산이다. 지출이 늘면 오락비든 외식비든 줄이는 게 가정 살림이다. 나라 살림이라고 다를 게 뭔가. 하물며 나랏 빚으로 인한 전 세계 경제 쓰나미는 이제 시작이라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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