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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함께 酒權 회복했지만 술의 전통은 못 찾았어요”

중앙선데이 2011.08.13 23:37 231호 12면 지면보기
‘그릇, 음식, 술’이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음식 문화는 완성된다. 그래서 그는 우리 그릇을 빚어 그 안에 우리 음식을 담았다. 음식에 곁들일 우리 술도 빚었다. 광주요 조태권(63·사진) 회장 얘기다. “음식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라는 신념으로 한식 세계화 전도사를 자처해 온 조 회장이 이번엔 특별히 술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이왕이면 광복절이면 좋겠다고도 했다. 찬란했던 우리 술 문화가 척박해진 건 일제 식민 역사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란다. 그는 “광복절에 되새겨볼 건 주권(主權)만이 아니라 주권(酒權)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조 회장을 만났다.

‘술의 한류’ 꿈꾸는 광주요 조태권 회장

-왜 술입니까.
“어떤 나라들은 단절의 역사 없이 전통이 진화했어요. 점진적 변화를 지켜보면서 전통과 함께 살아가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중간에 뚝 끊어졌잖아요. 그 단절 때문에 명맥을 근근이 이어온 여러 분야가 있지만 특히 술이 그렇다는 겁니다.”

-단절은 일제시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식민 역사가 시작되면서 우리 술 문화가 진화를 멈췄거든요. 우리는 원래 술을 담가 마셨습니다. 가양주(家釀酒)라고 하는데, 조선시대까지 집집마다 술을 빚었으니 얼마나 다양한 술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주세령을 내려서 가양주를 못 만들게 하고 면허제를 도입했어요. 풀뿌리에 기반한 우리 술 문화의 싹을 잘라내 버린 겁니다. 그러고는 일본식 주조법을 들여온 거예요. 술 도가가 사라진 자리를 일본 술이 메웠고, 광복이 되고도 우리 전통주는 자리를 못 찾은 거죠.”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말살된 전통주 문화는 광복 후에도 부활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가 세금을 걷기 위한 각종 규제를 만들면서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시장을 장악했다. 희석식 소주 일변도로 시장이 고착된 것도 문제지만, 조 회장이 생각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고급 고도주 시장을 수입 주류가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1965년에 정부가 곡주를 못 만들게 했잖아요. 곡주는 못 만들게 하고 고급 술이라고 스카치 위스키는 마셨어요. 위스키에 대항할 술을 하나 만들어 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싸구려 곡주는 못 만들게 하더라도, 우리 고급 술 하나는 만들었어야 했다는 거죠. 우리 건 없애 놓고 남의 걸 가져왔으니 더 문제인 거예요. 결국 우리 술은 서민의 술만 남았잖아요. 이런 게 세계화의 발목을 잡습니다.”

-우리 술 문화를 하향 평준화시켰다는 말씀이시군요.
“가치 경쟁이 아니라 가격 경쟁만 하게 된 거죠. 수직적 다양성이 없다는 말이에요. 5만원, 10만원, 20만원짜리 음식이 있고, 100달러, 1000달러, 1만 달러짜리 술도 있어야 하는데, 우린 천편일률적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한식이 끼니나 때우는 음식으로 인식되니까 ‘한식=5000원’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모든 한국 음식은 5000원의 족쇄를 차고 있는 거예요.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석식 소주가 ‘국민의 애환을 달래준다’고 하죠. 하지만 원가가 1000원도 안 되는 술을 마치 우리 대표 술인 것처럼 여기는 건 문제가 있어요.”

-고급이어야 가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보편성을 말하는 거예요. 수직적 다양성이 있는 나라에는 최고부터 대중적인 것이 동시에 존재해요. 미국을 봅시다. 문화의 용광로 아닙니까. 세계 문화를 다 녹여내고, 자기들만의 문화도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3000원짜리 햄버거가 전 세계에서 보편성을 갖는 거예요. 대중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하려면 고급 문화가 있어야 하고, 둘 사이의 폭이 넓어지면서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전한다는 얘기예요. 와인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막걸리의 인기는 어떻게 보시나요.
“부풀려진 면이 있다고 봐요. 몇 십억원어치 팔렸다고 좋아할 때는 아니라는 거예요. 여전히 국내에 스카치 위스키 수입액이 2억 5000만 달러가 넘고, 와인도 1억8000만 달러를 넘어요. 막걸리 시장은 많이 성장했다지만 아직 작아요.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내다봐야죠. 또 제로섬 게임을 생각하면 안 돼요. 사케 시장을 막걸리로 대체했다, 이렇게들 말하는데 세계시장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에요. 무궁무진한 세계 시장을 창출해서 우리 술을 퍼뜨릴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고급 문화가 필요한 거고요. 고급 술을 마셔보면 대중적인 막걸리도 마셔보자고 오지 않겠어요.”

그의 자택 거실엔 청자와 백자 옆에 광주요가 만든 ‘화요’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2005년 조 회장이 “고급스러운 한식 문화를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우리 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놓은 증류식 소주다. 타피오카, 고구마 등으로 만든 주정에 물을 타고 감미료를 섞은 희석식과 달리 증류식은 쌀을 발효시킨 술덧을 증류해 농축한 술이다.

-증류식 소주를 만든 것도 고급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나요.
“예로부터 귀한 술이었어요. 최고급 술이라 봉제사 때 증류식 소주를 썼죠. 맵쌀을 발효해서 증류 과정을 거친 게 증류식 소주예요.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우리 술을 내야 진짜 우리 식문화를 경험하게 할 수 있다고 봤어요.”

화요는 국산쌀 100%를 사용해 감압 증류 방식으로 빚은 술이다. 증류기 기압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증류하는 방식이다. 저온 증류 덕에 술에서 탄내가 제거되고 잡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는 같은 증류주인 보드카를 얘기했다. “우리 증류식 소주가 보드카보다 높은 수준의 술이다.” 보드카보다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이다. 증류식 소주가 세계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도 하나씩 채우고 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칵테일 레시피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음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올해 말 출판을 목표로 집필 중이다. 지금껏 입이 닳도록 해왔던 한식과 우리 술 얘기를 담은 책이다. 그야말로 ‘한식 세계화에 미친’ 그를 두고 혹자는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답했다.

“50년 전이면 먹고사느라 바빠서 문화니 전통이니 돌아볼 새도 없을 때예요. 또 식민지에서 막 벗어나서 우리 정체성이 한참 빈약할 때였어요. 그러니 외국에서 들어오는 건 다 ‘하이칼라’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50여 년을 지나서 우리 것을 되찾으려니 어려워요.”

그는 “어렵다”면서도 “그게 내 운명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며 껄껄 웃는다.
“60년대에 우리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사람들이에요. 돈도 빌리고, 원재료도 외상으로 샀어요. 그런데도 50년 만에 지금 수준까지 왔잖아요. 그렇게 한 민족이 우리 음식문화를 최고로 못 만들면 어떻게 해요. 남한테 손 빌릴 필요도 없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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