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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필 잭슨 “미국서 대통령보다 연봉 많으면 과도하게 받는 것 아닌가 ”

중앙일보 2011.08.13 01:28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NBA ‘선수 노조 - 구단주’ 충돌로 개막 불투명
11차례 우승 이끈 필 잭슨 LA 레이커스 전 감독





미 프로농구(NBA) ‘반지의 제왕’ 필 잭슨(65) 전 LA 레이커스 감독을 만났다. 지난 5월 은퇴를 선언한 그는 현역 선수와 감독 시절을 합쳐 모두 13개의 우승 반지를 보유한 NBA의 전설이다. 마이클 조던을 농구 황제로 만든 게 그였다. 그는 1989년 시카고 불스 감독이 되자마자 당대 최고의 스타인 조던을 사무실로 불렀다. “우리가 우승하려면 자네 먼저 득점왕을 포기해야 한다.” 그때까지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조던은 이후 여섯 차례 우승을 거두며 득점왕에서 농구 황제가 됐다. 99년 LA 레이커스 감독이 된 뒤에도 역시 한 번도 우승 반지를 껴보지 못했던 섀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3회(2000~2002년) 연속 우승을 일궈냈다. 2009년과 2010년에도 우승을 추가해 북미 프로 스포츠 감독 중 가장 많은 11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LA중앙일보=원용석 기자





●당신에게 스포츠란 무엇인가.



 “젊었을 때는 스포츠가 원초적인 경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필요가 없다고 믿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생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궁극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한다. 인생에서 ‘즐거움’처럼 중요한 것도 드물다. ‘스포츠를 하되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 내 고등학교 코치가 했던 말이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목사였고 엄격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성경 구절을 달달 외우게 했다. 아버지는 불같은 분이셨다. 그런 집안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했다.”



●부모의 엄격함이 당신을 ‘이단아(Maverick·별명이자 자서전 제목)’로 만들었나.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 집안이 엄격했던 사람들을 보면 결국 순응하거나 반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어렸을 때 구속적인 삶을 살아선지 어른이 된 뒤 오히려 더 모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NBA 선수가 된 동기는?



 “처음엔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뉴욕 닉스에서 뛰면서 번 돈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닉스 팬들의 열정을 보며 크게 감격했다. 그때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처음 받은 연봉이 얼마였나.



 “1968년 노스다코타 대학을 졸업하고 NBA 신인 때 받았던 연봉이 1만3500달러였다.”(그가 2009~2010시즌에 받았던 연봉은 무려 1200만 달러였다.)



●과거 마약을 복용한 게 인생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는데.



 “70년대 선수 시절 마리화나와 LSD를 복용하며 사물과 사람의 관계를 보는 관점이 서서히 달라지는 걸 느꼈다. 7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런 행동이 만연해 있었다. 마음이 평화로워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안 좋을 것 같아 끊었다. 이후 명상에 심취했다.”



●기독교인이면서 불교 사상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불교의 묵상에 관심이 많다. 특히 타오이즘,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선(禪)에 매력을 느꼈다. 평화로운 느낌이 좋았다. 내가 기독교인이면서 참선을 공부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는 크리스천에게도 상당히 호의적이다. 반면에 크리스천은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타 종교인들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자서전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다(그는 1987년 마이너리그 격인 CBA에서 우승해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지만 NBA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75년 자서전 때문에 NBA 구단들은 그를 영입하길 꺼렸다).



 “LSD를 복용한 것부터 NBA 뒷얘기들을 여과 없이 담아낸 게 문제였다. 그 책을 낸 것을 후회할 때가 더러 있다. 그 책에는 다른 내용도 많은데 언론이 마약 복용에 대한 내용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NBA도 이 때문에 나를 불신하던 시기가 있었다.”









필 잭슨 감독(오른쪽)과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을 지도한 사람으로서 그를 평가한다면.



 “진정한 수퍼스타는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최고의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조던이 바로 그런 선수였다. 그의 최대 장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90년대 초 불스 시절이었다. 나는 선수들에게 묵상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런데 조던은 묵상 시간을 따분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 조던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집중력 좋아지라고 하는 거다’라고 했더니 그는 ‘묵상 없이도 난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런 걸 할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이미 자신의 방식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내가 굳이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조던을 열외시켰다.”



●조던이 당신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나.



 “그 전에는 팀 동료들을 잘 믿지 않았다. 패스를 안 해서 (90년대 초 불스 센터였던) 빌 카트워트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도 간 적이 있다. 나에게 배운 게 있다면 팀 동료들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NBA에서 우승은 한 사람 힘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던도 깨닫게 됐다.”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중 누가 더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나.



 “조던이 보다 강한 몸을 가졌고 손도 더 크다. 10억 달러짜리 손이다. 상대 선수에게 파울을 당하면서 슛을 성공시키는 능력은 조던을 따를 자가 없다. 3점슛을 비롯해 외곽슛 능력은 브라이언트가 뛰어나다. 인사이드 게임은 조던 쪽이 강했다. 야투 성공률에서도 조던은 한 시즌에 50%를 몇 차례 넘겼지만 브라이언트는 50%를 넘긴 적이 없다.”



●농구 외에 다른 스포츠도 했나.



 “어린 시절 내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시간은 운동할 때뿐이었다. 풋볼도 하고 야구도 했다. 투수로 꽤 잘나갔다. LA 다저스로부터 드래프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야구경기에서 진 뒤 혼자 더그아웃에 마지막까지 남아 운 적도 몇 번 있다. (웃음)”



●감독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로 유명한데.



 “시즌 첫 원정에 나설 때 책을 선물한다. 각 선수들의 성격에 맞는, 또 그들이 읽고 배울 수 있는 책을 골라주는데 모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걸 다 경험하며 살 순 없다. 책은 좋은 간접 경험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지도자의 희생정신을 강조한 『코렐리의 만돌린(Corelli’s Mandolin)』을 브라이언트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브라이언트가 그리 감명 깊게 읽지는 않았다.”(코비 브라이언트는 과거 인터뷰에서 “잭슨이 선물한 책은 읽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잭슨은 브라이언트와의 불화로 2004년에 레이커스로부터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이듬해 복귀했다.)



●선수들이 책을 정말 읽었는지 테스트하는가.



 “멤버들은 다 읽은 다음에 나에게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마이클 조던도 리포트를 제출했나.



 “조던은 내가 준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표지 정도만 봤을 거다. 별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다. 그래서 한 번은 도박에 관한 책을 준 적도 있다.(웃음)”(조던은 도박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제리 크라우스(당시 시카고 불스 단장)와의 불화로 불스를 떠나게 됐는데 사이가 나빠진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시카고 트리뷴의 샘 스미스 기자가 쓴 책 『조던 룰(Jordan Rules)』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책은 크라우스와 조던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있는 낱낱이 드러냈다. 크라우스는 뒷얘기를 내가 다 제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후 그와 불편한 관계가 됐다.”(당시 크라우스는 잭슨에게 “82전 전승을 거둬도 넌 무조건 해고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잭슨은 98년 불스에 마지막 우승을 안겨준 뒤 코트를 떠났다.)



●당신이 1998년 NBA에서 떠나는 바람에 조던도 따라서 은퇴(1999년)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그때는 완전히 NBA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비록 우승은 많이 했지만 나와 선수들은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가 더 응집력이 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조던의 은퇴를 불러왔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할 문제다. 조던의 은퇴도 결국은 전적으로 조던의 결정이었다.”



●감독을 하면서 가장 강조하던 점이 있다면.



 “NBA 선수라도 만날 농구만 생각하면 삶이 지루해진다. 이들에게 농구와 함께 인생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내 견해로는 NBA 선수들이 한 28세는 돼야 진정한 성인이 된다. 직업상 사회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역시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선수들에게 터프할 필요도 있고 때로는 영적, 감성적, 지성적으로 접근할 때도 있어야 한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였나.



 “연습 때였다. 선수들이 연습을 통해 뭔가를 얻는 모습을 지켜볼 때 성취감을 느꼈다. 감독의 역할도 실전에 앞선 연습에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감독의 역할은 연습에서 시작해 연습에서 끝난다.”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우승을 하면 좋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목표(goal) 달성’이 아니라 ‘여정(journey)’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순간보다 경기 중 승리를 직감했을 때 더 큰 희열을 느꼈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2005년 레이커스에 복귀한 뒤 팀 재건에 성공했을 때다. 팀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정상에 오르기 매우 어렵다. 우리는 달라진 멤버로 그것을 해냈다.”



●당신이 떠나면서 레이커스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는데.



 “비록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무너졌지만 지금의 팀 전력으로도 여전히 미래가 밝다고 본다.”



●왜 은퇴하기로 결심했나?



 “직장폐쇄 이유가 컸다. 지난해 피닉스 선스와 플레이오프 도중 제리 버스 구단주와 점심을 먹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버스와 상의한 뒤 직장폐쇄가 다가오는 바로 전 시즌까지 지휘봉을 잡기로 합의했다. 경기도 열리지 않는데 연봉만 타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NBA는 7월 1일부터 직장폐쇄에 돌입했다. 다음 시즌이 축소되거나 최악의 경우 완전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 NBA와 선수 노조는 지난 6월 30일 만료된 단체협약을 대신할 새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구단주들은 선수들의 과도한 연봉이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선수노조는 수익 높은 구단이 적자를 내는 구단을 도와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직장폐쇄 문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대로 가면 구단 수가 축소(contraction)될 수밖에 없다. 구단주들이 일단 돈을 벌어야 리그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양측이 합의하지 못한다면 NBA의 인기 하락을 불러올 수도 있다.”



●NBA 연봉이 다른 프로 스포츠에 비해 높다.



 “사실 우리 모두 과도하게 많이 받는다. 난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대통령보다 연봉이 많은 사람은 다 과도한 연봉을 받는다고 본다.”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나?



 “11번 우승한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웃음). 원래 모든 게 이기기 위한 것 아니겠나. 항상 그렇다. 빌 러셀도 11번 우승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두고 ‘사상 최고의 센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NBA에 돌아올 가능성은?



 “글쎄, 아마 안 돌아올 것 같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나.”



●NBA 출신 친구로는 누가 있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 전 뉴저지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말고는 없다.”(브래들리는 잭슨에게 대통령 캠페인 매니저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어떻게 (레이커스 구단주 딸) 지니 버스와 사귀게 됐는지 궁금하다(잭슨은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커버 모델이자 레이커스 부사장인 지니 버스와 11년째 연인 관계다).



 “1999년 밴쿠버에서 리그 미팅이 있었다. 다음날 LA행이 잡혀 있어 먼저 미팅에서 나왔다. 지니 버스도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함께 공항에 갔다. 1시간30분여 동안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지니 버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비행기에 탈 때쯤 되자 같이 앉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는 일등석이고 지니는 일반석이었다. 구단주 딸이 일반석을 타는 것에 깜짝 놀랐다. 결국 지니 옆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에게 일등석을 주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생일 케이크를 선물했고, 얼마 뒤 내가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했다.”



●버스 구단주가 둘이 사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그는 지니 버스가 항상 나이가 좀 있는 사람하고 사귀는 걸 원했다. 나이 든 사람이 그녀를 더 아낄 것이라면서. 맞는 것 같다(웃음). 또 제리 버스는 (‘플레이보이’지 회장인) 휴 헤프너처럼 젊은 여자들하고 시간 보내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한테 둘의 관계가 어떠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지니 버스가 아버지에 이어 레이커스 구단주가 될 것 같은가?



 “내 생각엔 여자들이 사람들을 이용하는 능력이 더 탁월한 것 같다. 레이커스도 지니 버스가 그의 오빠들보다 더 잘 운영할 것으로 믿는다. (지니 버스는) 사람들을 다룰 줄 알고 정치적인 면도 있다. 농구에서도 정치 플레이가 작용한다.”



●당신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이란 평가를 받는다. 비결이 무엇이었나.



 “비결을 따로 생각한 적은 없다. 단 매순간에 충실하려 했다(I tried to live in th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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