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View 파워스타일] 국회의원 서상기

중앙일보 2011.08.13 01:21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예순다섯 살의 몸짱





1년 전쯤이었다. 지역구(대구)에서 열릴 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 27일~9월 4일)를 앞두고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말이다. 외국인들에게 대회를 홍보하려면 건강해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오전 7시면 국회 헬스장을 찾아 윗몸일으키기 등을 300번씩 했다. 주말이면 대구 함지산에서 주민들도 만날 겸 등산을 했다.



 등산 횟수가 170회를 넘길 즈음, 뱃살과 허리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다. 대신 배에는 ‘11자’와 ‘작은 스리팩 2개’가 생겼다. 중학교 3학년인 손자가 꽉 껴서 못 입는 잠바를 입을 수 있었다. 한나라당 서상기(재선) 의원이 65세에 ‘몸짱’이 된 사연이다.



 그의 도전정신과 끈기를 보여주는 건 몸뿐이 아니다. 서울대 공대(금속공학) 2학년 때 “국가의 소중함과 인간 존엄을 깨닫고자” 사흘을 노숙하며 배를 기다린 끝에 당시 입도가 쉽지 않던 소록도와 독도에 들어간 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포드자동차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던 1979년엔 과학자들을 유치하던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귀국을 결심했다. “포니를 조립하던 한국과 캐딜락을 생산하는 미국 간 기술격차를 줄이고 싶어서”였다. 마침 10·26이 터지면서 주변에서 귀국을 말렸지만 결국 한국기계연구원에 왔다. 과학기술계를 대변하고 싶어 2002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 정책특보로 정치에 입문했고, 2004년 박근혜 전 대표의 공천(비례)을 받았다. “10·26이 없었다면 귀국 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박 전 대표는 “특별한 인연이네요”라고 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도 ‘스토리’가 있다. 여성용 롤렉스 시계①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조경공사로 처음 돈을 번 뒤 어머니께 사드린 것이다.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간직하고 있다. 손거울②은 1976년 포드에 입사하며 회사 매점에서 샀는데 35년째 쓰고 있다. 미국 웨인주립대에서 2009년 받은 명예의전당 기념패③도 아낀다. 한국 과학기술 발전 등에 기여한 것을 인정받았는데, 학교 역사상 외국인이 명예의전당에 오른 게 처음이란다.



 8년째 재미 과학자 총회에 갈 정도로 미국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애용하는 물품은 국산이다. 금강제화 리갈(구두), 캠브리지(양복) 등이다. 가끔 후원자가 하는 양복점에도 간다. 이공계 출신 의원 21명으로 구성된 ‘이공(理工)’ 모임 회장,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 홍준표 대표 특보단장 등 맡은 게 많을 땐 “편한 게 최고”란다. 최근엔 올 초 갖게 된 전화번호 때문에 기분이 좋다. 끝 네 자리 번호 ‘1144’. ‘매일매일 감사하자’는 생활신조와 일치해서다.



백일현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