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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조세린 “한국인이 한국 좋아하게 하고 싶어요”

중앙일보 2011.08.13 01:15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하버드대 출신의 가야금 전도사 / 배재대 국제학부 교수





조세린(趙世麟·41). 알래스카가 고향인 미국인 여성이다. 본명은 조슬린 클라크(Jocelyn Clark)다. 스물두 살인 1992년 한국에 처음 왔다. 가야금이 그녀를 한국으로 오게 했다. 일본의 고토, 중국의 쟁 같은 현악기를 이미 배운 뒤였다.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결국 가야금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가야금을 배우던 그녀는 하버드대에 진학해 가야금 병창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국내외의 무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 2008년에는 배재대 교수(아펜젤러 국제학부)가 됐다. 하버드 박사 출신으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미국인 여성이라는 점에 세간의 관심을 얻었다. 한국 언론들은 그녀에게 ‘가야금 전도사’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배재대에서 조 교수를 만나 가야금에 빠지게 된 사연을 들었다. 그녀는 “한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 대한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았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벽안의 가야금 사랑, 그리고 한국에 대한 쓴소리



●가야금은 어떻게 배웠나요.




 “국립국악원에서 처음 배웠어요. 서울대 교수로 계시는 이지영 선생님, 그리고 지애리·강정숙 선생님께 배웠어요. 황병기 선생님께도 조금 배우고 지성자 선생님께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님께 가야금 병창을 배웠죠.”



●가야금에 앞서 일본의 고토와 중국의 쟁을 먼저 배웠다죠.



 “제가 미국 웨슬리언 대학을 다녔어요. 거기가 민속음악으로 유명해요. 88년에 제가 입학했을 때 학교에 고토 수업이 생겼어요. 제가 고토를 배우고서 푹 빠졌어요.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A+’를 처음 받은 게 고토 수업이에요. 사실 제가 A, B 학점 다 많이 받았거든요. 그리고 중국에 쟁이라는, 고토와 비슷한 악기가 있다고 해서 90년에 중국 난징예술대에 가서 쟁과 서예를 배웠죠.”



●내친김에 가야금도 배운 것이군요.



 “일본 악기, 중국 악기를 모두 배웠는데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뉴욕에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자를 통해 국립국악원을 소개받았어요.”



●가야금 배우는 게 어렵지 않던가요.



 “병창(가야금을 타며 판소리 등을 부르는 장르)을 배울 땐 제가 아직 한글도 못 읽었어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외웠어요. 저를 가르친 선생님은 저보다 더 답답했을 거예요.”(웃음)



●조세린이라는 한국 이름은 어떻게 얻었나요.



 “하숙집 오빠가 지어줬어요. 한국 이름 중에 ‘조세린’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제 미국 이름과 비슷하다고….”



●하숙집요?



“제가 서울대 근처 신림동에서 하숙을 했거든요.”



●하숙집 오빠들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나 보네요.



 “하숙집에서 오빠들한테 한국어를 배웠죠. 경상도 사람들이었어요. 그때는 한국말을 모르니까 (그분들) 발음이 특이한 것도 몰랐었죠.”(웃음)



●배워 보니 가야금이 재미있었나요.



 “처음에는 재미없었어요. 쟁이나 고토로 연주하는 음악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가야금은 산조니, 진양조니, 다스름이니 뭐 이런 것들이 도무지 뭔지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게다가 손에서 계속 피 나고 아프고…. ‘내가 도대체 한국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그러다 그냥 ‘좋아할 때까지 하자’고 마음먹었죠. 결국 가야금을 좋아해서 가야금에 빠졌어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좋아할 때까지 하자’는 말, 멋지네요.



 “쉽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오래 안 가잖아요. ‘내가 이해를 못 하니까 좋은 줄 모르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노력해 보자’ 이런 생각이었죠.”



한국에서 가야금을 배우던 조세린은 94년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한다. 한국의 학벌주의가 그녀로 하여금 하버드에 가게 했다.



 “제가 한국에서 가야금 명인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기회가 잘 안 생겼어요. 진짜 만나고 싶은데, ‘안 된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 또래의 피아노 전공자인데, 한국 음악에 관심이 있어 한국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하버드에서 왔다’고 하니까 기회가 탁탁 열리는 거예요. 제가 그걸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나도 하버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조세린은 가야금 병창에 등장하는 판소리 가사와 중국 문학 간의 관계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200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옌칭 연구소 한국관 관장이던 윤충남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죠.”



 논문을 쓰는 와중에도 조세린은 가야금을 들고 여러 차례 국내외 무대에 섰다. 국내는 물론이요 96년 하버드대, 2002년 베를린·시카고·알래스카, 2004년 프랑스 그르노블, 2006년 독일 쾰른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2003년까지는 고토·쟁도 두루 연주했으나, 2004년 이후론 가야금에 집중하고 있다.



조세린은 윤충남씨의 소개로 2008년 배재대 아펜젤러 국제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한국 학생들에게 ‘종교와 사회’ ‘비교 미학’ 같은 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 조세린은 교수가 되고 나서 한국 언론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더 많이 받게 됐다.



●이전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고토, 쟁보다 한국 가야금이 더 좋다”고 말하셨던데.



“그렇게 말해야죠, 한국에선.”(웃음)



●“가야금이 제일 좋더라” 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나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이랑 비교하는 것 좋아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열등 콤플렉스’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거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한·중·일 3국 악기에 각각 고유한 매력이 있겠죠.



“서로 다 다르죠. 처음에는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하나도 같지 않아요. 음악이라는 것이 악기 통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사람 속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게 음악이니까.”



●가야금의 매력이 뭔가요.



 “가야금은 농현(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서 꾸밈음을 내는 연주기법)이 특히 매력적이에요. 꼭 사람 목소리 같아요.”



●10년 뒤에도 계속 한국에 계시겠죠.



 “아마도요.”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보다 늙은 모습?”(웃음)



●한국 사회를 위해 조 교수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죠.



“내 역할은 한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인들은 한국을 싫어해요.”



●왜 그럴까요.



 “잘 모르겠어요. 창피할 게 하나도 없는데, 한국 사람들 머릿속에 계급의식이 너무 많아요. 그것 때문에 전통이 다 없어져요. 전통은 고급스러운 것만 남아 있을 수 없잖아요. 국악은 다 시골 냄새가 나잖아요. 서양음악이 아니니까 국악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나 봐요. 지금 젊은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서양음악밖에 안 듣는데 어떻게 국악을 좋아할 수 있겠어요.”



●한국인들도 솔직히 가야금을 잘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조 교수는 참 대단하십니다.



 “저도 참 힘들어요. 아무리 가야금을 잘 타도 ‘우리’에 못 들어가니까. 한국 사람들이 인종주의자(racist)이니까.”



●무슨 뜻이죠.



 “한국 사람들은 국악이 ‘혈(血)’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는 ‘아니다’ 해요. 지금 미국 음대에 가보면 다 한국 학생들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우리도 서양음악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왜 ‘외국인들은 국악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외국인도 진심으로 오랫동안 하면 국악을 잘할 수 있어요.”



 조 교수는 올 10월 독주회를 앞두고 맹연습 중이다. 40여 분가량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게 된다. 그녀로서는 큰 도전이다. 조 교수는 “걱정이 많이 된다”고 했다.



 “제가 욕심이 있어요. 외국인치고 잘하는 것 말고 진짜로 잘하고 싶어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갈 길이 머니까 걱정이죠. 열심히 연습해야죠.”













알래스카 소녀 한·중·일을 섭렵하다



조 교수는 용감한 여성이다. 이역만리의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동북아 3국을 체험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요가 강사를 하세요. 두 분 다 알래스카에 사시고요.”



●부모님이 아시아 경험이 있으셨나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군인 가족에서 태어나셨어요. 할아버지는 공군 정보장교셨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으로 발령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중학생 시절에 일본에 살아보셨죠. 아버지도 월남전에 참전해 전쟁을 경험하셨어요. 외할아버지는 해군 대위셨고요. 진주만 공습 때 진주만에 계셨었죠.”



이런 가족사 덕에 조세린은 아시아에 친근함을 갖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 가족과 떨어져 1년간 일본에서, 20대 초반에 중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매우 개방적이셨나 보군요.



 “부모님이 둘 다 군대 가족에서 자라면서 해마다 이사하고 해외에도 나가 살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알래스카는 옆 마을에 갈 때도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야 해요. 옆 마을에 가든지, 하와이에 가든지, 해외에 가든지 똑같은 비행기를 타요. 그러니 멀리 가는 게 하나도 안 무서워요. 고등학교 때 제가 수영선수를 했는데, 옆 마을에서 대회가 열리면 배를 타고 19시간을 갔어요. 그러니 뭐 거기 가든지, 해외에 가든지 똑같은 일이에요, 우리한테는.”(웃음)





j 칵테일 >> “박칼린 언니가 하숙집도 소개해 주고 … 참 많이 도와줬어요”



조세린 교수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뮤지컬 감독 박칼린을 떠올리게 했다. 두 사람은 친분이 깊다. 조세린이 20대 초반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때 박칼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조세린에게 처음 가야금을 가르쳐준 이는 이지영 서울대 교수다. 이 교수가 박칼린을 소개해줬다.



●박칼린씨와는 어떤 관계였나요.



 "그걸 많이들 물어보시네요. 제가 좋아하는 언니예요.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너무 많이 얘기하면 박칼린 언니한테 미안하잖아요. 옛날에 나를 많이 도와줬던 분인데.”



●뭘 도와줬나요.



 “다요. 제가 한국말을 전혀 못할 때였잖아요. 하숙집 소개해주고, 제가 혼자니까 어디 갈 때 데리고 가주고 그랬죠. 제가 이불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시장까지 데려가주고, 볼 만한 영화가 있으면 같이 보자고 하고, 좋은 연주회도 같이 가자고 하고요. 술 마실 때 나오라고 하고. 매일 친절하게 해줬어요.”



●박칼린씨는 뭘 할 때였나요.



 “서울대 작곡과 다니는 학생이었죠. 박동진 선생님한테 판소리도 배우고 할 때예요.”



●음악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눴나요.



 “많이 얘기했죠. 사실 처음에는 제가 가야금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쟁(중국 현악기)을 한국에 가지고 왔어요. 박칼린이 그걸 보고 재미있다고….”



●지금은 박칼린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지 않나요.



 “절대요. 전혀. 박칼린이 훨씬 나보다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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