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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1. 청산별곡 (13)

중앙일보 2011.08.13 01:03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지난 줄거리>


주인은 떠나 없고 추측만 무성했다
“대마도, 일본 본토 혹은 유구국에서 온 거간꾼의 소행일 수도 있겠군요
분명한 건 여기서 알 만한 이가 뒷거래를 하고 도왔다는 겁니다”

서기 1248년 강화도 도성 선원사. 대장도감의 수기 도승통 밑에서 팔만대장경 판각 불사를 지휘하고 있던 나, 지밀은 동방기독교인 경교(景敎)의 ‘마리아와 이수 이야기’가 담긴 엉뚱한 경판을 새겨 올려 보내온 고려국 최고의 각수장이 김승을 조사하기 위해 남녘으로 가는 배를 탄다. 국제무역선인 대마도 상선의 우두머리 가네야마를 만난 나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나는 김승의 공방이 있는 변산으로 가기 전에 분사대장도감이 있는 경상도 남해에서 내려 무신정권 집정 최이의 처남 정안을 찾아간다. 진양(진주)과 남해의 토호인 정안은 사재를 털어 대장경 판각 불사를 주도하다시피 해온 인물이다. 그곳에서 선승이자 교학에도 눈이 밝은 일연 스님을 만난다. 일연과 나는 승선과에서 각각 장원과 차석을 한 인연이 있었다. 일연은 노모를 모시고 다니는 특이한 스님이다. 정안은 일연과 나의 해후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날 밤 연회를 베풀어준다. 정안은 남해 저택을 절집으로 만들고 모든 재산을 불가에 내놓기로 한다. 이튿날 새벽, 남해가 발칵 뒤집힌다. 판당에 모셔둔 주요 경판들을 도둑맞은 것이다. 남해 보승군 수장인 중장군은 ‘왜놈 장사꾼들이 제일 탐내는 게 고려국 경전’이라며 어제 낮에 포구에 배를 댄 적이 있는 대마도 국제무역상 가네야마를 의심한다. 나는 중장군과 생각을 달리하지만 의심스러우면 추격선을 붙이라고 말한다. 관음포 반대편 포구인 비란리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일러스트=이용규







오리가량은 족히 달렸다. 옅은 해무가 낀 비란리 포구는 현청이 있는 성(城)의 바로 코앞이었다. 늦장부리다 뒤늦게 나온 수령이 중장군과 함께 수군들을 무릎 꿇려 놓고 쥐 잡듯이 족치고 있었다. 간밤 숙취로 수령의 눈은 토끼눈처럼 벌겋다.



 “정말이렷다. 밤새 포구에 드나든 배가 한 척도 없었단 말이지?”



 중장군은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렸다.



 “정말입니다요. 달도 없는 그믐날 밤에 무슨 수로 왜선들이 들어오겠어요.”



 수영 망루에서 밤새 번을 섰다는 수군들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선착장에 몰려든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는 분위기였다.



 “자, 지금 한가롭게 조무래기들 붙잡고 노닥거릴 때가 아니오. 어서 추격선을 붙여야지. 해적들이 이곳 비란리로 들어왔다면 틀림없이 동남쪽 지족해협으로 빠져나갔을 터.”



 정안이 수령과 중장군을 일깨웠다.



 “바닥이 뾰족한 왜선들은 우리 고려의 평저선보다 날렵하고 빠르오. 추격은 어렵소.”



 중장군은 냉정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참인가? 작은 첨저선(尖低船)를 띄워서라도 추격해 봐야지.”



 “그랬다가 요행히 따라붙더라도 해적이나 다름없는 놈들에게 당하면요.”



 “무장한 군선을 뒤에 붙이면 될 일! 어서 추격군단을 꾸리게. 대마도로 가는 가네야마의 상선을 붙들어 검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정안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중장군이 추격군단을 꾸리는 사이 수령은 남해고을에 계엄령을 내렸다. 관음포와 비란리 포구는 물론 대국산과 삼봉산 일대 마을주민들을 샅샅이 문초했다. 간밤 늦게까지 마실 나갔던 이들, 댓바람부터 배나 그물을 돌본 이들, 댓바람에 논물을 대고 온 이들이 현청에 줄줄이 붙잡혀 갔다. 이런 때는 밤잠이 적거나 부지런한 것도 죄가 되었다.



 “어르신, 분사대장도감 소속 스님들이나 각수장이들, 일꾼들을 전부 모아주시지요.”



 판당으로 돌아온 나는 정안에게 말했다.



 “조반 먹고 나면 각 부서에 다 모이게 되어 있소.”



 “그럼 그때 판당 마당에 모이게 해주시지요.”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서둘러 아침을 먹은 나는 정안의 집사를 데리고 판당 마당으로 갔다. 인보는 물론 심드렁해 하던 정안과 일연도 내 뒤를 따라왔다. 아침햇살이 퍼지면서 안개는 말끔히 걷혀 있었다. 나는 부서별로 모인 분사대장도감 사람들을 사열했다. 모두 백여 명이나 되었다. 강화도 선원사 대장도감보다 세 배쯤 많은 인원이었다.



 “아직까지 안 온 사람들이 있을 터. 누구누구요?”



 도열한 대중이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비상상황인 만큼 결석한 자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때 집사가 혼잣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두런거렸다.



 “탁연(卓然) 스님은 안 나오셨군. 또 운수행각이신가?”



 “탁연?”



 “아무 때고 훌쩍 떠났다 돌아오곤 하시는 유명한 스님이지요.”



 집사가 내게 말했다. 모인 사람들 모두가 담담한 표정들이었다. 탁연은 참지정사를 지낸 최정분의 아들이다. 황궁의 내시로 있다 최씨 무인정권하의 국정에 환멸을 느끼고 출가했다. 머리 깎은 절집이 조계산 수선사(修禪寺: 송광사)여서 조계산인으로 통했다. 5년 전엔가 국자감 대사성과 전라도 안찰사를 지낸 최자(崔滋)가 강진 백련사를 중창할 때, 현판 글씨를 도맡아 쓸 정도로 명필이었다. 정안은 그를 남해 분사대장도감에 초빙해 필경사들을 감독하게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없다고 행여나 탁연 스님을 이번 일과 연관시키진 마오. 그럴 분이 절대 아니니까.”



 정안이 내 옆으로 와서 쐐기를 박았다. 그만큼 신뢰가 컸다.



 나는 각수들과 교정을 맡은 스님들을 살폈다. 행색도 행색이지만 눈빛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얼굴이 넙데데한 젊은이 앞에 멈췄다. 비린내 묻은 갯바람 결에 불의 향기 같은 게 배어났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얼굴빛은 밝았고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간밤에 뭘 했지?”



 나는 손바닥으로 삼베적삼 오른쪽 어깨 부위를 소리 나게 치며 물었다. 불의 향기는 삼베 끈으로 동여맨 이 자의 떠꺼머리에서도 풍겨 나왔다.



 “중풍 든 부친 수발을 들었어요.”



 “저녁 내내?”



 “저녁에도 아침에도요.”



 “이자 말이 맞소이까?”



 “암만요. 종상이는 남해고을 사람 다 아는 효잡니다.”



 집사가 분명하게 확인해 주었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켜 불의 향기를 기억한 다음 옆사람들을 훑어나갔다.



 “판당 열쇠는 누가 관리하는가?”



 반백의 사내가 손을 들었다.



 “어제 저녁 때 확실히 판당 문을 걸어 잠갔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자물쇠가 풀려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모를 일입니다. 소인은 분명 자물쇠를 채웠고 열쇠는 집사 어른께 맡기고 집에 갑니다.”



 나는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안의 충복인 집사를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여벌의 열쇠가 있었다고 봐야 옳았다.



 “판당 문을 닫아걸 때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던가?”



 “시렁 아래쪽에 삼베자루 뭉치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평소에 없었던 거라서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습기 때문에 뒤틀린 경판들을 잘 싸서 어따 옮길 모양이라고 여겼지요. 그래서 그냥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삼베자루는 누가 가져다 놓았나?”



 나는 대중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접니다.”



 종상이었다.



 “언제?”



 “어제 오후에요.”



 “누가 시켰더냐?”



 “탁연 스님이십니다.”



 “알았다.”



 대중을 해산시킨 나는 종상이를 데리고 탁연 스님의 방으로 갔다. 정안과 일연은 물론 인보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따라왔다. 요사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탁연의 처소는 넓고 조용했다. 정안의 배려로 독채를 혼자 쓴다고 했다. 방문을 여니 짙은 묵향이 확 달려들었다. 벽 쪽 천장에 달아매 놓은 대나무 시렁에 세필로 쓴 판하본 한지들이 즐비하게 걸렸고 방 가운데 탁자에는 감지(紺紙)로 된 절첩본이 펼쳐져 있었다. 은가루를 아교로 개어 먹물 대신 찍어 쓴 경전이었다. 황실이나 귀족들이 소장하는 명품이다. 하필이면 경판을 도둑맞은 『묘법연화경』이었다.



 우리 황제의 수명은 하늘 끝까지 뻗치고 태자의 나이는 땅의 뒤편까지 이르며, 이웃나라 군병(몽골 침략군)은 와해되고 조정과 강토는 거울과 같이 맑아지기를 축원하옵니다. 진양공(최이)께옵서는 장수하시어 나라의 주춧돌이 되고 영원히 불법(佛法)의 울타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나의 선친과 죽은 누이(최이의 전처), 형제와 6친 가운데 삼도(三途: 지옥, 아귀, 축생)에 이르러 윤회를 받은 사람은 모두 구제되어 다 함께 극락세계로 왕생하기를 바라옵니다. -병신년(丙申年: 1236) 12월 15일 정분(鄭奮)이 기록하다.



 뒷장에 붙인 발문이었다. 정분은 정안의 다른 이름이다. 십여 년 전 정안이 쓴 것을 탁연이 최근에 은니(銀泥)로 베껴 쓴 것이었다. 정안은 세 개의 보상화(寶相華)가 그려진 절첩본 표지를 만지작거렸다.



 “이 빼어난 사경 솜씨 좀 보시게.”



 내 눈앞에 절첩본을 일일이 넘겨 보인 정안은 아직까지도 촉촉하게 젖어 있는 접시 안의 은니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은니를 붓에 찍어 사경하던 주인은 어디론가 떠나 없고 남의 방에 들어온 이들의 추측만 무성했다.



 “네가 판당에 가져다 둔 삼베자루들이 어디에 쓰였겠느냐?”



 “경판들과 함께 사라졌다면 그걸로 성스러운 경판들을 정성스레 쌌겠지요. 그분께서는 경판을 당신 몸처럼 소중하게 다루셨거든요.”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혼곤하게 잠에 빠졌는데 오밤중에 그분께서 오셨어요. 누추한 저희 집에요. 먼 길 떠나는 행장을 하셨더라고요. 그분은 늘 바람 같았지요.”



 “아느냐? 네 몸에서는 아직까지도 관솔기름 냄새가 난다.”



 “밖은 캄캄했고 안개가 자욱했어요. 전 횃불을 켜 들고 그분 가시는 길을 비춰주었지요. 뭍과 가까운 관음포 너머 차면 쪽으로 가셨어요. 거기에 초승달 같은 빈 배 한 척이 떠 있더군요. 그분은 직접 노를 저어 북쪽으로 미끄러져 가셨어요. 여러 차례 손짓을 해주셨답니다. 짙은 어둠과 골 깊은 안개가 그분을 이내 감싸버렸죠. 저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문득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이 이런 건가 싶더군요.”



 “그 배에 경판들이 실려 있었더냐?”



 “아주 작은 조각배였다니까요. 텅 빈 조각배요.”



 “다른 배들은?”



 “전혀요.”



 “그가 어르신께 남긴 말은 없었더냐?”



 “아니오. 아 참, 이 은병들을 주고 가셨어요. 아버지 병구완에 쓰라며.”



 종상이 괴춤에서 꺼낸 건 놀랍게도 값나가는 진짜 은병들이었다. 엄지만 한 게 세 개나 되었다.



 “왜인들 거로구나.”



 옆에서 절첩본을 펼쳤다 접기를 반복하고 서 있던 정안이 탄식하듯 읊조렸다.



 “대마도, 일본 본토 혹은 유구국에서 온 거간꾼의 소행일 수도 있겠군요. 분명한 건 여기서 알 만한 이가 뒷거래를 하고 도왔다는 겁니다.”



 “허허, 탁연, 그 화상이 하필이면 이 판국에 또 어디론가 떠나버려서 괜한 오해를 사고 있구먼.”



 정안은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안은 내 추정은 물론 탁연이 종상에게 준 왜인들의 은병까지도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 그에게 탁연을 추격해 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귀신 같은 놈들이었다. 아무리 내부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상당한 양의 경판들을 밤새 쥐도 새도 모르게 가져간 재주가 놀라웠다. 경판 글자들이 손상되지 않게끔 삼베자루로 정성스럽게 싸서 포구까지 여러 차례 이거나 지어 날랐을 터였다. 그 자체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닌가. 도적질이라는 이름의 야간 종교행렬.



 나는 탁연의 방을 꼼꼼히 뒤졌다. 다른 단서를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정안에게 남긴 간찰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난처하지는 않았을 거였다.



 “그 경판들 찾기는 글렀고 다시 새길 일이 까마득하군.”



 “새기는 것만큼이나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 습기와 좀벌레, 경전 도둑놈들까지 막아내야 하니까.”



 분사대장도감 일을 도맡게 된 일연에게 내가 말했다. 무엇보다도 안전한 곳에 판당을 옮겨 짓는 일이 급선무였다. 나는 강화도나 남해 같은 바닷가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이참에 실감했다. 깊은 산중 역시 그랬다. 몽골군들은 공산 부인사까지 쳐들어와 대장경을 불태웠으니까. 그랬다. 산과 바다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이 세상 삶은 불안하다. 살아있기에, 그래서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야 하기에 늘 불안하게 마련이었다. 나는 나보다 먼저 강화도를 떠나 부인사와 해인사 일대를 돌아보고 있을 천기 승록을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판당 자리를 물색해 낸 걸까. 어쩌면 벌써 강화도 선원사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에 추격군단이 돌아왔다. 왜구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가네야마 상선을 따라잡아 검수했지만 괜한 헛수고였다고 한다. 내 믿음대로 가네야마는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정안이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 할지라도 탁연은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글=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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