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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력 고갈 땐 긴축정책 말아야”

중앙일보 2011.08.13 00:59 종합 1면 지면보기



세계경제 진단 … 장하준, 재정위기 해법을 말하다





장하준(48·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는 격동의 현장에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그의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스페인을 넘어 프랑스로 전이되고 있다. 장 교수는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경제학자(Outspoken Economist)’로 불린다. 이른바 경제상식이나 통념을 직설적으로 질타해서다. 인터뷰에서도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긴축처방은 경제체력이 살아 있을 때나 효과가 있다”며 “금융위기 탓에 체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그런 처방은 재정위기만 더 악화시켜 결국 채권자들을 궁지로 몰 것”이라고 지적했다. 12일 긴급히 케임브리지대 장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미국·유럽 거대 은행의 주가가 폭락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 은행들은 단일 통화(유로화)만을 믿고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 국채를 분트(독일 국채)와 같은 급으로 여겨 마구 사들였다. 원금을 떼일 조짐이 보여 그 대가를 지금 치르는 중이다.”



 -위기 상황이 좀 바뀌는 듯하다.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진 구제금융 덕분에 재정위기 피해가 채권 금융회사엔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에 은행 주가가 폭락했다.”



-사태가 어디까지 갈 것 같은가.



 “이탈리아·스페인은 SOS를 외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두 나라 부채 규모(약 2조 달러)가 너무 커 구제가 불가능할 듯하다. 국가파산제(정리절차)가 필요하다. (국제기구 감독 아래) 한 나라의 채권·채무관계를 동결하고 지불능력 이상의 빚은 탕감해 줘야 한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채권 금융회사들도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다 방만하게 대출해 준 죄가 있다.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은 모든 고통이 긴축정책을 통해 채무국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처방이 적절한가.



 “주요 국가들이 재정을 풀어야 한다. 경기부양을 과감하게 실시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은 중요하지 않다. 죽은 아들 나이 세는 격이다. 우선 경제를 살려 세금을 더 거둬들여야 재정이 좋아진다.”



 -방만한 재정이 민간 투자·수요를 억제한다고 한다.



 “경제가 정상적일 때나 일어날 법한 현상이다. 위기 상황에선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내수를 살려 줘야 한다. 양적완화 백날 해 봐야 소용없다. 국제공조를 통해 긴축 족쇄를 풀어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체제를 가동하는 건 어떤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서야 되는데 요즘 그의 영향력은 많이 약해졌다. 유럽 지도자들도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하다. 중국도 (금융) 긴축을 중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G20체제가 유명무실해진 듯하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파장은 어떨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 3사 등급은 의견일 뿐이다. 그런데 이게 법적 강제성을 띠고 있어 글로벌시장 패닉을 더욱 부추긴다. 주요 국가의 은행 건전성 평가와 연기금의 채권 투자 여부가 신용등급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다. 그래서 등급 강등의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정확하지도 않은 신용평가 때문에 글로벌시장 불안이 더욱 증폭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어떻게 막을 수 있나.



 “그 법적 강제성을 없애야 한다. 글로벌시장이 짊어지고 있는 신용평가란 멍에를 제거해야 한다. 건전성 등을 평가할 다른 방법도 있다. 유럽 국가나 중국·한국 등이 자체 신용평가회사를 키운다고 지금 같은 사태가 없어지지 않는다.”



 -영국 폭동사태가 긴축정책과 관련 있는가.



 “현재 보수당뿐 아니라 과거 노동당 정권도 재정 지출을 필요 이상으로 줄였다. 내수가 위축돼 젊은 층 실업률이 고공행진했다. 10년간 이렇게 쌓인 불만이 터진 것이다. 그들은 조직화되지도 않았다. 이념이나 정강을 갖고 있지도 않다. 상점을 약탈하고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 리더가 없어 진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강남규 기자



◆장하준 교수=1963년에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 가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90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주류(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가로 유명하다.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논리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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