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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스물셋 평범한 청년, 1년 만에 기억의 달인이 되다

중앙일보 2011.08.13 00:25 종합 20면 지면보기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

조슈아 포어 지음

류현 옮김, 이순

419쪽, 1만5000원




이 책을 가장 허술하게 소비하는 방법은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노하우 참고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통 두뇌로 기억력 천재 되기 1년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그런 유혹을 부채질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미국의 평범한 스물세 살 청년이 하루 1시간 남짓 1년간 기억력 증진 훈련을 거쳐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 우승을 한 실화이니. 냉장고 문을 왜 열었는지,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곧잘 까먹던 지은이 조슈아 포어는 1년 뒤 스피드 카드 종목에서 미국 신기록까지 세웠다. 책에 소개된 ‘2500년 된 정통 기억술’을 수련한다면 ‘청년 치매’에 시달리는 당신도 미스(터) 브레인이 되지 말란 법 없다.



 그러나 예일대를 졸업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은 여느 두뇌 계발서와 다르다. (그런 계발서는 지금도 시중에 차고 넘친다) 2005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전미메모리 챔피언십을 취재하러 갔던 포어는 체험 기사를 쓰는 차원에서 다음 해 대회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기억술을 사사하며 훈련하는 과정 속에서 그는 ‘과연 기억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기억력은 어떻게 창조되고 저장되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나간다.









기억이 없으면 시간관념조차 사라진다? 기억상실증 환자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기억력을 높이면 우리 삶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 사진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Persistence of Memory)’의 청동 조각 버전. [중앙포토]



 ‘기억의 문화사’라고 명명해도 좋을 이 기술(記述)은 2500년 전 그리스 키오스의 시인 시모니데스의 기억술과 구전으로 전승된 호메로스의 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억 훈련은 고전교육의 핵심이었고 인류의 지혜를 축적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15세기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쇠락했다. 기억이 기록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책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독서는 ‘정독’에서 ‘다독’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인쇄된 책은 100억권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 선조가 『명심보감』을 외우던 방식으로 교양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다. 노트북 컴퓨터·USB·스마트전화 등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기억력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것만 골라 읽는 검색 능력일지 모른다.



 기억력을 키워서 무얼 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도 남는다. 포어는 영화 ‘레인맨’의 실제 주인공 킴 피크(영화에선 더스틴 호프만)도 만났다. 9000권이 넘는 책에서 읽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 남자는 공중도덕 수칙은 모두 외우지만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진 못했다.



 포어는 거울 속의 자기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심각한 기억상실증 환자 EP도 만났다(이 대목은 영화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속에서 글쓴이가 깨달은 것은 메모리 챔피언십은 기억력이 아니라 창의성을 시험하는 장(154쪽)이며,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가는 무엇을 얼마나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사실(373쪽)이다.



 책은 2006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포어가 세계 메모리 챔피언십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지만 순위권에 들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1년의 기억술 훈련은 그에게 파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얼굴을 재빠르게 외우게 해주었고,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 일지도 훤히 기억하게 했다. 그러나 축하 파티에서 진탕 마신 그는 다음날 얼굴에서 메달 자국을 발견한다. 술에 취해 메달을 벗어놓고 자는 것을 ‘깜빡’ 했던 것이다.



강혜란 기자







명사들이 말하는 ‘나와 기억력’



주위에 PC 8대, 기억 보조장치로 활용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77·전 문화부 장관)
 = 40대까지는 책이 스캔한 것처럼 머리 속에 찍혔다. 어떤 책 3분의 1지점 오른쪽 면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하고 찾아보면 백발백중이었다. 숫자는 역사 연대를 연상하면 자동적으로 기억됐다. 50대 초부터 적중률이 떨어졌다. 그래서 일찌감치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다. 무수한 자료를 읽고 스캔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지금도 데스크탑 넉 대를 포함해 컴퓨터 8대를 운용한다. ‘천자문’을 며칠에 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억보다 해석과 직관, 의심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지적 호기심이 있으면 기억력이 나빠도 보조장치를 자기 뇌처럼 이용할 수 있는 시대다.



신문읽기로 새로움 얻고 두뇌 자극











◆신성일(영화배우·74)
 =지금까지 인연을 맺었던 영화와 사람들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거의 막힘이 없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남들처럼 메모를 하는 습관도 없다. 아마도 영화배우라는 특수성이 작용한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사는 직장인과 달리 배우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다. 매일매일이 사람과 사건의 연속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변화가 없는 생활 때문이라고 한다.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신문 읽기를 권한다. 지금도 주요 일간지를 구석구석까지 훑는다. 활자로 읽는 뉴스는 두뇌를 자극한다.



노트 한권에 5년 일정, 메모가 최고죠











◆윤형주(가수·64)
 =기억력이 좋다기보다 메모광이다. 대학노트 한 권에 5년치 일정을 기록할 수 있는데, 지금 6권째, 30년을 사용해 왔다. 그날 만난 사람들, 사소한 사건에 대해 특징적인 것을 기록해 놓는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그때로만 돌아가기만 하면 주변 것까지 다 기억해낼 수 있다. 메모는 그걸 돕는 장치다. ‘세시봉’ 친구들도 "형주가 기억하는 거면 맞을거야”라고 말한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감성적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수학·물리를 좋아했다. 음악이란 게 박자를 따지는 만큼 굉장히 수리적이다. 숫자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다른 사람보다 명확하다. 또 하나 사람을 처음 볼 때 흘려보지 않고 또렷이 본다. 머릿속에 입력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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