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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고지혈 약값 연 6만원 줄어

중앙일보 2011.08.13 00:22 종합 8면 지면보기
정부가 약값 거품을 뺀다는 명분으로 약가(藥價)를 강제로 낮추는 초강력 건보 재정 수술 카드를 꺼냈다. 이번 조치는 지금까지의 건보 재정 정책과는 규모와 차원이 다르다. 2006년 8000억원 삭감에 비하면 이번 조치는 핵폭탄급이다. 연간 매출액 13조원 중 2조1000억원이 줄어든다. 그것도 단계적 인하가 아니라 내년 3월 단칼에 내린다.



 이번 조치는 두 갈래로 시행된다. 예를 들어 어떤 신약의 건강보험 인정가격이 100원이라고 치자. 특허가 끝나면 지금은 80원이지만 내년부터 70원으로 내린다. 복제약(제너릭) 가격도 68원에서 59.5원으로 떨어진다. 1년이 지나면 특허만료약·복제약 구분 없이 53.6원으로 내린다. 약효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시판 중인 약 8776개도 신약 대비 가격이 최고 80원에서 내년 3월에 일제히 53.6원으로 내린다. 외국 회사, 국내 회사 구분이 없다. 지난해 처방약 1위 약인 한국화이자의 리피토(고지혈증약)는 지난해 1033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한 해에 270억원이 깎인다.



 정부가 초강력 카드를 꺼낸 이유는 건보 재정 적자와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약값이 100원 내린다고 치면 건보 재정이 70원, 환자가 30원 덕을 본다. 브이반정(광동제약)·클로그렐정(유한양행)·리피로우정(종근당)을 1년 내내 복용하는 고혈압(高血壓)·고지혈증(高脂血症) 환자의 연간 부담은 31만2000원에서 25만1000원으로 6만1000원 줄어든다. 이번 조치는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사는 약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조치의 다른 이유는 거품 제거다. 보건복지부 고경석 건강보험정책관은 “부패방지위원회의 추정자료에 따라 약값 매출의 20% 정도를 리베이트용 거품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약업의 매출액 대비 판매관리비 비율이 35.6%로 제조업(11.2%)의 세 배에 이르고, 이 돈이 리베이트에 쓰인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인식을 같이한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진수희 복지부 장관이 약가 인하방안을 보고할 때 이 대통령이 ‘거품이 있다면 눈치 보지 말라’는 요지의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또 시장 규모에 비해 국내 제약회사(265개)가 너무 많아 이번 기회에 리베이트로 영업하는 데는 퇴출돼야 한다고 본다. 대신 될성부른 회사는 밀어 주기로 했다. 연구개발(R&D)을 많이 하는 회사를 골라 ▶약가 우대 ▶세제 지원 ▶금융 지원 등의 육성책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정부가 “경쟁력 없는 소규모 회사들이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런 데가 몸집을 줄여 새로운 생존전략을 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 영업 등의 ‘전과’에도 불구하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2만 명이 실직하고 제약업계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이규황 부회장도 “이번 조치를 2014년부터 3~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시행해 감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심재우 기자



◆건보 약가(藥價)=일반적으로 기업이 만든 제품의 가격은 기업이 정한다. 이와 달리 약품의 가격은 정부가 정한다. 약품 비용을 국민이 낸 건보료(건보 재정)에서 지출하기 때문이다. 1만4400여 개의 약이 건보에 등재돼 있다. 건보 지출의 약 30%가 약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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