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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임진각에 울릴 음악의 힘

중앙일보 2011.08.13 00:13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이던 1992년 5월 27일 사라예보의 한 빵가게에서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쏜 포탄이 터져 빵을 사려고 길게 줄 서 있던 사람 가운데 22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다음 날 오후 4시쯤 그 현장에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가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나타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로 알려진 곡(실은 지아조토의 작품)을 느리고 장엄하면서도 애절하게 연주했다. 그 후 연주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22명을 추모하는 뜻으로 22일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그 연주시간 동안 총성도 멈췄다.



 # 음악은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며 방패도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때로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 음악에 담긴 혼이 총성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89년 11월 12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나흘째 되던 날,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음악회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은 베를린 필과 함께 베토벤 교향곡 7번과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바렌보임의 말처럼 “음악이란 폭력과 추악함에 대항하는 최고의 무기”다. 음악은 해머가 아니지만 그 어떤 장벽도 무너뜨리는 힘이 있고, 음악은 단지 파이프가 아니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소통시키는 능력이 있다.



 # 지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리고 다시 내일과 모레 광복절까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바렌보임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임진각에서 연주한다. 그가 이끌고 온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99년 그와 『오리엔탈리즘』이란 저서로 유명한 팔레스타인 출신 석학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가 의기투합해 만든 오케스트라다.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괴테가 쓴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stlicher Divan)’의 제목을 그대로 오케스트라 이름으로 가져올 만큼 화해와 소통을 정신적 기저로 삼는 이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은 유대계와 아랍계의 혼성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을 비롯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의 젊은 음악가들이 모여 있다. 거기에 더해 중세 시절 가톨릭과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교도들이 뒤엉켜 싸우던 것을 종식하고 절묘한 화합의 묘를 이뤄냈던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에 오케스트라의 거점을 두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 이번 연주회에서 특히 첫날(10일) 연주한 교향곡 5번 ‘운명’은 분열과 분단 그리고 싸움이 아니라 다시 하나됨과 화해가 우리의 진짜 운명임을 새삼 전율 속에 느끼고 깨닫게 했다. 둘째 날(11일) 연주한 교향곡 3번 ‘영웅’은 애초에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보나파르트’라는 제목 대신 그가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것에 실망한 나머지 베토벤이 ‘신포니아 에로이카-한 위대한 인물을 추념하기 위해’라고 제목을 바꿔 달았던 바로 그 곡이지만 이것을 들으며 이 땅에 다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진짜 영웅의 시대가 도래하길 마음 깊이 바라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셋째 날(12일)의 교향곡 7번은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바렌보임이 베를린 필과 함께 연주한 곡이다. 이 곡을 듣는 내내 155마일 휴전선도 그처럼 무너져 내릴 날이 반드시 올 것만 같았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인 89년 12월 25일 동베를린 가극장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은 런던 심포니, 뉴욕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의 단원들로 구성된 혼성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면서 4악장에 나오는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꿔 부르게 했다. 이제 내일 예술의전당과 특히 광복절에 임진각에서 조수미를 비롯한 4명의 솔리스트와 130여 명의 합창단이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교향곡 9번 ‘합창’을 공연할 때 한국판 ‘자유의 송가’가 임진강 너머 멀리멀리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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