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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텐프로’ 상대 100억 등친 타짜 잡고보니 …

중앙일보 2011.08.13 00:08 종합 18면 지면보기



카드 뒷면에 형광물질 묻혀
특수 콘택트렌즈로 패 들여다봐
손동작·은어 활용 4명 한통속
피해자 22명 … 3억 잃고 자살도



1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공개한 이씨 등이 사용한 형광표시카드. 특수 안경을 통해 바라보니 카드 종류를 나타내는 기호가 보인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한 여성이 지난해 12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모(당시 34세)씨의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이었다. 그는 숨지기 직전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도박으로 3억원을 잃고 파산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정씨는 2008년 3월부터 2년간 강남 일대의 빌라와 오피스텔 등에 임시로 개설된 도박장에서 일명 ‘훌라’ ‘바둑이’ 등 도박을 하다 계속 돈을 잃었다. 빚은 점점 늘어났고 갚을 능력이 없자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택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정씨와 유흥업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들도 같은 도박장에서 억대의 돈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도박장은 누구도 돈을 딴 적이 없는 ‘돈의 무덤’ 같은 곳이었다. 동료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도박판은 철저히 기획된 사기극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상습도박 전과 10범인 이모(57)씨 등 4명은 2006년 3월부터 유흥업소 여종업원(일명 텐프로)만을 상대로 강남 일대를 돌며 사기도박을 벌였다.



 이들은 특수 콘택트렌즈를 착용해야만 보이는 형광물질로 포커 카드 뒷면에 카드 모양과 번호를 썼다. 이 렌즈는 사기 도박꾼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것으로 일반 콘택트렌즈를 개조한 것이다. 이씨 등은 두통 등을 핑계로 도박장 밖으로 나가 특수렌즈를 착용하고 들어왔다. 또 손 동작, 카드 사이의 거리, 은어 등을 이용해 게임에 이기는 패를 서로 주고받았다. “빨리빨리, 스피드”라고 외치면 2번 카드, 왼손을 주먹을 쥔 채 세우면 10번 카드란 뜻이다. 이들은 총책인 ‘설계사’와 특수렌즈를 이용해 사기를 치는 ‘선수’, 자금을 담당하는 ‘꽁지’ 등으로 역할을 나눠 미리 여관에 모여 훈련하기도 했다. 범행에 사용한 카드는 “양로원과 당구장에 가져다준다”며 모두 수거해 갔다.



 경찰은 정씨처럼 사기를 당한 여성이 22명에 이르며 이들이 잃은 돈만 100억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어떤 여성은 하룻밤에 6000만원을 잃기도 했다. 이씨 등이 5년 동안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10차례 이상 도박 장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유흥업소에 종사한다는 약점 때문에 섣불리 신고를 못한다는 점도 노렸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2일 이씨 등 4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으며, 도주 중인 피의자 2명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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