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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⑧

중앙일보 2011.08.13 00:01 종합 23면 지면보기
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



시 - 이원 ‘의자와 노랑 사이에서’ 외 19편










이원은 3년 만에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랐다. “그 동안 슬픈 마음으로 결핍된 것을 향했다면, 이제는 어떤 상황과 사물을 온전히 바라보려고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날 화장실 문틈으로 변기가 보였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 불편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어둠뿐인 곳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변기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어서” 다시 문을 열곤 했다. 자기의 몸을 부여잡고 치열한 명상을 하는 모습이 꼭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같았다.



 그래서 시인은 ‘반가사유상’의 무릎에 앉아 자신의 맨몸을 들여다봤다. “발은 몸의 것인데 발자국은 왜 길에 찍히는 것인가”를 “비명은 몸의 것인데 왜 몸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다가 두 발이 “반가사유상의 명상으로 끓기도 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이원씨는 “이 시를 쓸 무렵에 경계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세계에 경계를 그어놓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무생물과 생물,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 처음에는 경계로 인해 어긋나는 것만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경계에 스미는 걸 보게 됐다”고 했다. 경계로 인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고, 만나고, 닿는 것에 대한 사유가 시에 그대로 녹아든 이유다.



 두 세계가 경계를 두고 맞닿아있는 건 불편한 일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경계도 세계도 지워보려고 했지만 다 사라져도 최소한의 것은 남는 것 같았다. 그는 “최소한의 그것은 고독, 명상의 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을 이리저리 굴리다 ‘일요일의 고독’ 연작이 나왔다. 이씨는 “우리는 언제나 시끄러운 것들 속의 고독을 생각하지만 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이라고 설명했다. 월요일의 고독이 아닌 일요일의 고독에 천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평일 내내 시끄럽다가도 일요일만 되면 낯설도록 폐허처럼 보인 여의도의 고독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고독을 두고 슬픈 감정을 덧칠하지 않는다. 오히려 “뼈의 안쪽에서 뼈는 무엇을 붙잡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고독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니다”(‘일요일의 고독 2’)는 건조한 고백을 툭 던져놓는다. 최소한의 것이 어쩌면 우리를 지탱하게 하고, 끝까지 견디게 하는 힘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계숙 심사위원은 “시인이 겪는 고통이 바닥까지 가서 너무나 투명한 고통,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가서 나오고 있는 고독을 그려낸다”며 “정말 맨살 탁 튀어나온 것 같은 인상”이라고 평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원=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92년 세계문학으로 등단.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



일요일의 고독-4



꽃봉오리가 맺힌 곳이 고요하다



하늘 밖은 둥글고 흙 속은 웅성댄다



수백 개의 창들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내부는 창만 바꾸고 있다



차 한 대가 그늘로 들어온다



그늘은 시간을 직선으로 자른다



밀려드는 햇빛에 허공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딸각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놀이공원의 대관람차가 멈추어선다



무용수의 세워진 발 끝



길 너머에 붉은 해가 투명하게 잠기는 바다가 있다고 했다







글쓰기도 학습이다, 포환던지기처럼



소설 - 조경란 ‘학습의 生’










공사장 가림막 앞에 앉은 조경란 작가. 가림막 틈으로 새파란 가지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무채색의 삶에서도 솟아나는 생의 열망, 작가는 그걸 좇아 일본으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경란(42)씨는 성실하다. 1996년 등단 이래 한 해 한 권 꼴로 책을 냈다. 뜨개질을 하든, 기타를 치든, 빵을 굽든, 복어를 다루든 1년에 한 번씩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 그런 ‘공부’는 온전히 작품에 담긴다. 근작 산문집 『백화점』은 ‘감각의 여왕’이라 해도 무방할 특유의 감성과 성실한 취재로 엮은 책이다. 남들은 쉬는 기분으로 써내는 산문도 논문 쓰듯 끙끙대며 공들인다. 그는 재능이 아닌 노력이 소설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학습의 生(생)’(문학과사회 2010년 겨울호)은 제목부터 그런 작가의 면모를 떠올리게 한다.



 “저는 재능이 없는 작가예요. 그러니 공부해야죠. 인생이란 학습의 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간다는 걸, 그 순간엔 잘 모르지만.”



 주인공은 막 이혼하고 은퇴한 마흔아홉의 여교사다. 자기 몸이 스스로를 적으로 알고 공격해대는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산 좋고 물 좋은 동네를 찾아 이사한다. 그녀의 시골 생활에 활력을 주는 건 먹을 것을 배달해주는 동네 구멍가게 ‘무순상회’의 중3짜리 아들 ‘무순’이다.



 투포환 선수를 꿈꾸는 무순은 그녀 집 마당을 빌려 연습을 한다. 절대 무중력, 혹은 암흑 공간에 있다고 느끼던 그녀에게 쿵! 하고 떨어지는 투포환 소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섬세하고 고독한 여자의 생과 거칠고 단순한 무순의 생,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둘의 삶이 그녀의 집 마당에서 조금씩 겹쳐진다.



 백지연 예심위원은 “마당은 만나고 소통하고자 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조경란의 소설은 항상 자기성찰적이면서 타인과의 소통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집합이 커질수록 상처가 생겨난다. 아들이 여자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순상회 여주인은 상한 음식을 보내며 적의를 드러내고, 세탁소 여자는 그녀에게 속삭인다. “자기, 윤리 선생님이었다며?”



 둘 사이의 우정은 그러나 무순이 지갑을 훔치는 사건으로 제동이 걸린다. 둥근 쇠공을 밀어내는 힘과 그것을 받아내는 힘 사이의 균형이 한 순간 깨져버린 것이다. 작가는 처음엔 투포환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단다. 남들이 보기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그러나 완전무결한 구(球)를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대신 힘의 균형, 쇠공이 그려내는 궤적, 공을 줍고 다시 던지는 동작의 단순한 반복에 매료됐다. 청탁을 받으면 허겁지겁 써내는 생활은 이제 접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둔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쳐 발표한 것이다. 쇠공을 반복해 던지는 것처럼, 그녀의 글쓰기도 지루한 반복이자 학습이다. 그는 지금 한 달 일정으로 도쿄에 머물고 있다. 인터뷰는 도쿄로 떠나기 전 날인 2일 이뤄졌다.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거기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떠나고 싶었지만 엄마 때문에 못했죠. 이번에도 엄마랑 엄청나게 싸우고 가는 거예요. 소설은 도스토옙스키 『노름꾼』 한 권만 들고 갈 거예요. 나머지는 공부할 책들. 아, 작가가 너무 모범적으로 보여도 안 되는데….”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경란=1969년 서울 출생.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코끼리를 찾아서』 『풍선을 찾아서』, 장편 『가족의 기원』 『복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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