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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미인 정치인 시대

중앙일보 2011.08.12 00:21 종합 29면 지면보기






양선희
온라인 편집국장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시쳇말은 빈말이 아닌 듯하다. 첨예한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요즘 정치세계에서도 미인(美人)에겐 관대하고, 대중은 넋을 잃는다. 정치 입문 한 달 만에 한 나라 총리직까지 거머쥔 미인도 있다. 등장과 함께 ‘정치 신데렐라’로 불리며, 일약 세계 스타 정치인으로 오른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당선자 얘기다. 물론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동생이라는 후광도 작용했다. 하지만 세계 언론들은 ‘수준급 미모’ ‘젊고 예쁘다’고 칭송하며, 처음부터 호의적으로 그를 맞았다. 각국 외교관들이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총리후보인 그와 악수하기 위해 줄지어 선 모습도 외신을 탔다. 국내 언론들도 언제부터 이렇게 태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싶을 만큼 태국 선거 소식을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화보(畵報)’급으로 전하기에 바빴다.



 파키스탄의 라바니 카르 외무장관도 최근 스타급으로 떠올랐다. 파키스탄과 인도 간의 평화회담 재개를 위해 인도를 방문한 그의 ‘여신급’ 외모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인도 언론들은 파키스탄이 앙숙 국가라는 것도 잊고 그에 열광했다. 국내 언론도 이례적으로 저 먼 나라인 인도와 파키스탄 외무장관 회담 소식에 큰 지면을 할애했다. 주 내용은 수려한 외모와 패션 감각으로 앙숙인 인도인의 넋을 빼놓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인도 입국 당시 로베르토 카발리의 선글라스를 썼고,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있었다는 등 패션에 대한 묘사도 상세했다.



 근세기 들어 언론의 관심을 받은 여성 정치인들은 주로 비극적인 정치인들의 딸이나 아내로 정계에 입문한 이들이었다. 파키스탄의 고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필리핀의 고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 등이 그런 경우다. 그러다 최근 미모로 눈길을 확 끄는 여성 정치인들에게 스폿라이트가 옮겨지고 있다. 이들은 엄숙하고 침울한 앞의 경우보다 밝고 발랄하다.



 유사 이래 정치와 미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치의 역사에서 여성의 ‘미모’는 남성의 ‘권력의지’와 맞먹는, 타고난 ‘실력’이었다. 과거 정치와 미인의 관계를 논할 때는 포사(褒姒)나 서시(西施)처럼 왕의 총기를 가려 나라를 망친 ‘경국지색(傾國之色)’ 사례가 주류였다. 그러다 근자에 이처럼 실력 있는 미인 정치인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현은 과거 ‘경국지색’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고, 미인 정치의 새 장을 열 것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또 미인들이 남자를 통해 세상을 움직였던 ‘리모트 컨트롤’ 권력에서 벗어나 직접 권력의 자리로 이동했으니 장한 일이기도 하다. “카르 외무장관은 파키스탄의 새로운 대량 살상무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인도의 한 평론가 말처럼 미인 정치인은 자기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게 아니라 경쟁국을 교란하는 데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인 정치인을 그 자체만으로 폄훼하거나 질투해선 안 된다.



 그런데 카메라 렌즈와 미디어의 성(性)은 ‘수컷’이라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이 세계를 지배해온 주체가 남성이다 보니 그들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기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에 미인 사진과 기사가 넘치는 것도 ‘수컷’의 본능 때문이다. 대중은 이를 통해 남성의 눈으로 찍어낸 매혹적인 사진과 기사로 이들을 접한다. 미인의 입장에선 이런 미디어의 힘을 빌려 과거 한 남자만 움직였던 데서 벗어나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힘까지 얻게 됐다. 물론 미인 앞에서 즐거워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다만, 이젠 국민들이 경쟁국의 미인 정치인에게 홀리지 않고, 국민의 대표를 뽑을 때 외모에 앞서 그의 업적과 실력과 심성을 꼼꼼히 챙기는 내공을 쌓을 필요는 있겠다.



양선희 온라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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