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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킹콩 등 연기한 얼굴없는 배우 … 이 남자 이번에는 침팬지다

중앙일보 2011.08.10 00:52 종합 26면 지면보기



‘혹성탈출’ 시저 역 모션 캡처 전문 앤디 서키스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CG캐릭터에 생동감 불어넣어



앤디 서키스(위), 시저(아래)



환경운동가이자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은 “인간이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고 했다.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18일 개봉)은 구달의 경고를 첨단기술력이 뒷받침된 영상으로 증명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침팬지가 유인원 무리의 반란을 이끈다. 그들의 사고력이나 조직력, 행동력은 인간의 짐작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인공 침팬지 시저는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영향으로 인간 못지 않은 지능을 가졌다. 치료제 개발자인 윌(제임스 프랭코)의 집에서 자란 시저는 난폭하다는 이유로 보호소에 감금된다. 모욕적인 대우를 당한 시저는 유인원 무리를 규합해 탈출한다. 시저가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금문교를 나무 타듯 옮겨 다니는 날렵한 움직임은 실감 100%다. 희로애락의 감정표현도 발군이다. “내가 꼭 꺼내줄게”라는 윌의 약속에 코를 킁킁거리는 장면에선 콧날이 시큰하다. 우리 안에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동물보호소장에게 쉰 목소리로 “안돼(No)”라며 인간의 언어로 으르렁거리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시저의 실감연기 뒤엔 영국 출신 배우 앤디 서키스(47)가 있다. 그는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콩’에서 각각 골룸과 킹콩을 연기해 ‘모션 캡처 전문배우’로 불린다. 173㎝ 단신의 ‘얼굴 없는 배우’지만, 웬만한 ‘얼굴 있는’ 배우를 넘볼 정도로 각광받는다. 잭슨이 촬영 중인 ‘호빗’ 시리즈에서 다시 골룸 역을 맡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3D 애니메이션 ‘틴틴의 모험: 유니콘의 비밀’에선 선장 역으로 모션 캡처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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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의 컴퓨터그래픽(CG)과 같이 발전해온 기술인 모션 캡처가 진일보한 건 ‘킹콩’(2005)과 ‘아바타’(2009)를 거치면서다. 특히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배우들에게 초소형 카메라를 머리에 달게 했다. 이 카메라가 얼굴 근육은 물론 속눈썹·눈동자·땀구멍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담아냈다.



 배우가 섬세하게 감정연기를 펼칠수록 CG캐릭터의 표정도 풍부해진다는 얘기다. 배우가 CG기술의 ‘부속품’이 아니라 CG와 결합해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조력자’가 된 것. 서키스가 “유인원의 동작을 단순히 흉내 낸 게 아니라 모션 캡처를 하면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연기를 위해 그는 1970년대에 “인간 염색체가 섞였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똑똑했던 ‘인간 침팬지(휴맨지)’ 올리버를 참고했다.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서키스는 시각효과의 잠재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끌어안아 시저에게 지혜와 영혼을 불어넣었다”고 칭찬했다.



 이전까지 모션 캡처 연기는 장비가 갖춰진 실내세트에서 이뤄졌다. 배우들은 그린 매트 앞에서 혼자 연기했다. ‘혹성탈출’은 촬영장에서 모션 캡처 배우와 일반 배우들이 같이 연기를 했다. CG와 실사의 경계를 사실상 허문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과학기술로 왜곡하려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는 ‘혹성탈출’이 이런 다양한 기술적 뒷받침에서 탄생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기선민 기자



◆모션 캡처(motion capture)=디지털 특수효과의 하나. 배우가 센서를 몸에 붙이고 연기하면 그 동작이 컴퓨터에 기록된다. 이 데이터를 CG캐릭터에 집어넣으면 동작이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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