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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78) 노루 사냥

중앙일보 2011.08.10 00:49 종합 27면 지면보기



쉴 틈 없는 스케줄, 유일한 탈출구는 사냥



1960년대 후반 서울 이태원 자택에서 개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신성일(오른쪽)·엄앵란(왼쪽에서 둘째) 부부. 신성일은 70~71년 무렵 분주한 촬영 일정에도 사냥을 즐겼다.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내게 영향을 미친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사냥이다. ‘피스톨 박’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사격에 일가견이 있던 박 실장은 1971년 태릉선수촌 입구에 사격장을 만들고, 78년 국내 최초의 국제대회였던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서울에 유치했다. 그는 대회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박 실장이 태릉사격장을 방문하면 나를 비롯해 배우 송재호,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등이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60년대 후반 어느 날, 가슴이 탁 막혔다. 살인적 스케줄로 365일 중 빨간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 돌파구로 사냥을 시작했다. 70~71년에는 명절마다 2박3일 일정으로 전국 각지 사냥터를 돌아다녔다. 나는 태릉사격장에서 클레이사격 연습으로 감각을 키운 후 사냥터로 떠났다. 아내 엄앵란은 벨기에제 브로닝 5연발총을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주기도 했다.



 사냥용 차로는 랜드로버를 갖추었다. 원래 65년 무렵에는 둥글둥글한 55년형 개조된 지프차를 탔다. 당시에는 폐차 200여 대에서 나온 부품을 모아 차 한 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잡하게 조립된 차는 배선이 취약하다. 흰 반창고로 전선을 감았을 정도였다.



 그 해 ‘가을에 온 여인’(박경리 원작, 정진우 감독)을 강릉 앞바다에서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프차에 불이 났다. 홍천경찰서 앞에서였다. 전선이 합선된 것이다. 동승했던 배우 최은희도 차에서 뛰어내렸다. 사람이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다시는 그 차를 탈 수 없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59년형 랜드로버 지프차를 샀다. 영국이 사하라 사막에서 독일과 대치하며 개발한 차여서 아주 튼튼하고, 촬영·사냥에도 제격이었다. 뒷자리는 두 명씩 마주보고 앉도록 돼 있었다. 단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열대지역용 차량이라 히터가 없었다. 뒷자리에 석유곤로를 싣고 다녀야 했다.



 70년대 초반 사냥에 열중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해 수안보 온천장에 여장을 풀었다. 거기서 한 고개만 넘으면 문경새재였고, 그 왼쪽에 있던 마을은 노루와 꿩을 사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구 친구들을 싣고 거제도까지 가 사냥한 적도 있다. 바다오리는 바다 위에 떨어져 수거하기 어려웠다. 백미는 꿩 사냥이다. 사냥개와 함께하곤 했다. 날짐승은 깃털이 겹겹이라 산탄(散彈)이 잘 박히지 않는다. 반드시 하늘로 띄운 후 쏘아야 했다. 사냥개는 주인에게 ‘수풀에 꿩이 있다’고 눈짓을 해준다. 방향을 조준하고 있으면 사냥개가 뛰어든다. 백발백중이다.



 겨울 어느 날, 나는 노루를 잡아 이태원 181번지 집으로 가져왔다. 보통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때만은 자랑하고 싶었다. 노루는 양순한 동물이다. 불자인 아내 엄앵란은 “여보, 노루는 가능하면 잡지 마세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바로 다음날 밤 집 지하실에서 화재가 났다. 보일러 문제였다. 불이 번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지하가 홀랑 탔다. 나는 집주인으로서 화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벌금을 냈다. 엄앵란은 그 화재를 노루 사냥의 후유증으로 여겼다. 그리고 72년, 정부가 전국 수렵금지를 발표하면서 사냥놀이를 접게 됐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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