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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화요칸중궈(看中國)] “시장병을 쳐라” … 개방 30년, 신좌파 봉기

중앙일보 2011.08.09 02:00 종합 8면 지면보기
중국 지식인과 서구 지식인 중 누가 국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칠까. 답은 중국이다. 중국엔 야당도 없고 언론의 역할도 약하다. 이런 사회에선 지식인의 논쟁이 정치를 대신한다. 정책결정자가 자신 을 대변할 지식인을 내세우거나 지식인이 정책결정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다. 지식인의 부침은 정책의 향배와 직결된다. 중국의 내일을 이끌어 갈 세력은 누구인가.


화요칸중궈(看中國) - 중국을 보다
중국 바로보기 - 신좌파에게 중국 미래를 묻다

베이징대 광화(光華)관리학원은 중국 최고의 경영대학원이다. 지난해 말 이곳의 사령탑 장웨이잉(張維迎) 원장이 갑작스레 사퇴했다. 광화학원을 세계적 수준의 비즈니스 스쿨로 키운 장본인이었기에 파장은 컸다. 당시 그는 2011년 학교 운용방안을 짜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스로 물러난 게 아니란 이야기다. ‘그의 학문적 성향에 부담을 느낀 대학(정부) 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측성 보도가 쏟아진 이유다.









 장 원장을 사퇴시킨 ‘외압’의 실체는 무얼까. 전문가들은 ‘신좌파(新左派)’를 꼽는다. 신좌파는 2000년대 들어 급부상한 지식인 그룹이다. 시장보다는 국가의 간섭을,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다. 이들은 자유주의 성향의 신우파 지식인을 공격해 왔다. 그 빗발치는 포화의 중심에 장웨이잉이 있었던 것이다.



 장 원장은 신우파를 대표하는 학자다. 계획경제를 독재정치의 근원으로 본다. 공공부문이 완전히 해체돼 민간에 팔릴 때 중국에 진정한 자유가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 운용은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심판’의 위치로 물러나야 한다(國退民進)”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방의 신자유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신좌파는 이런 그를 ‘시장병(市場病)에 걸렸다’고 비난한다. “시장 숭배주의가 빈부격차·부정부패 등 현재 중국의 온갖 고질병을 낳고 있다.” 신좌파 성향인 왕후이(汪暉) 칭화대 교수의 지적이다.



 양빈(楊斌)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지나친 서방화 정책으로 중국이 지금 자본주의 진영의 주변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탈(脫)서구를 외친다. 비난이 ‘시장병’에서 ‘서방병(西方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왼쪽으로 갈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갈까. 계획인가 시장인가, 복지가 우선인가 성장이 먼저인가…. 중국 지식계가 좌우로 나뉘어 치열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장웨이잉의 퇴임은 그 싸움에서 신좌파가 힘을 얻고 있음을 말해준다.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돈만 보고 달려온(向錢看)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2위로 컸지만 한 해 15만 건의 시위가 말해주듯 불평등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 일보 직전이다. 이에 대한 반발을 배경으로 한 신좌파의 득세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시라이(薄熙來·박희래)가 이끌고 있는 충칭(重慶)시는 그 현장이다.



 충칭에선 지금 농민을 위한 주택건설사업이 한창이다. 성장에서 소외된 농민에게 의료·교육·주택 등의 복지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시정부 정책 중 하나다. 또 충칭의 대학생 사이에선 농촌체험 활동이 유행이다. 붉은 깃발을 들고 농촌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친다. 문화혁명 시기의 하방(下放·지식인의 농촌노동 활동)을 연상케 한다.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의 이런 정책은 ‘충칭 모델’로 불린다. 충칭 모델의 근저엔 신좌파의 논리가 깔려 있다. 도시 곳곳에선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혁명정신을 배우자는 홍색(紅色) 캠페인이 벌어진다.









시진핑(左), 보시라이(右)



 국가의 간섭과 공평한 분배, 사회주의 순수성 회복 등 신좌파 주장 그대로다. 지방인 충칭으로 발령받으며 정치적으로 좌천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보시라이는 이 같은 신좌파 논리를 발판으로 정치적 재기를 꿈꾸고 있다. 특히 차기 총서기로 확실시되는 시진핑(習近平·습근평) 국가부주석이 지난해 12월 충칭을 방문해 “충칭이 중국 발전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해 보시라이와 신좌파 모두 큰 힘을 얻었다. 내년 가을부터 펼쳐질 시진핑 시대에도 신좌파가 득세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마오쩌둥의 극좌 노선에서 방향을 틀어 개혁·개방을 주창한 이래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 지식계는 서구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개혁파 지식인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신우파로, 시장을 강조하지만 정치적 권위주의와 타협한 세력이다. 다른 하나는 신좌파로, 시장의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평등을 강조하는 그룹이다.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시대까지는 신우파 세상이었다. ‘공산당이 자본가의 이익도 대변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쩌민의 ‘삼개대표(三個代表)’ 이론은 신우파의 득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2002년 말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시대 들어 두 진영의 역학관계에 변화가 인다. 친민(親民)을 강조하는 그의 성향이 신좌파의 주장과 통하면서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랑셴핑(郞咸平) 홍콩중문대 교수의 2004년 ‘국부 유출’ 논쟁이다. 그는 “국유기업의 민영화 정책으로 국가의 부(富)가 일부 특권층의 배만 불려준다”며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신우파에 대한 신좌파의 첫 공격이었다. 당시 랑셴핑은 국부를 유출시키는 부패 기업인 구추쥔(顧雛軍)의 비리를 폭로했고, 장웨이잉은 ‘기업가를 추한 괴물로 만들지 말라’며 맞섰다. 결과는 구추쥔의 감옥행으로 신좌파가 힘을 얻는 배경이 됐다.



 이후 신좌파는 빈부격차 해소,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주장하는 후진타오 주석의 ‘과학발전관’에 논리를 제공하며 세를 불려왔다. 그리고 지난해 말 신우파의 중심인물인 장웨이잉까지 밀어낸 것이다. 중국은 내년 가을 제18차 당 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1인자 등극이 확실한 시진핑은 어느 편에 설까. 보시라이의 충칭 모델을 칭찬한 점을 볼 때 신좌파가 힘을 얻을 공산이 크다. 성장을 소홀히 하진 않겠지만, 성장의 그늘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한우덕 기자



◆신우파 vs 신좌파= 급진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마오쩌둥 시대에도 우파는 있었다. 류사오치(劉少奇·유소기), 덩샤오핑 등도 한때 우파로 몰렸고, 추안핑(儲安平) 등 학자들이 자유주의를 외치다 숙청당하기도 했다. 우파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덩샤오핑 시기에도 좌파는 존재했다. 그들은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하며 개혁·개방의 발목을 잡았다.



 신우파는 80년대 이후 서방에서 풍미하는 신(新)자유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주로 서방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자들을 중심으로 90년대 중반 부각됐다. 신좌파는 개혁·개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70~80년대 원조 좌파와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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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중 도표 속 추안핑의 사진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였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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