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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날 새벽 노숙자 잊지 못한다”

중앙일보 2011.08.09 00:26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동률
서강대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에 제일 높은 것. …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 여명 속의 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을, 새벽인데도 벌써 휘황찬란하게 켜진 불빛들을,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쳐다본다.”



 베스트셀러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은 열여섯 살에 처음 서울역을 경험했다. 1970년대 중반 전북 정읍에서 상경한 시골 소녀가 서울역에 도착해 맨 처음 본 건 거대한 갈색 빌딩. 넓게 퍼진 들판만 보고 자란 소녀에게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은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소설가는 그때의 충격을 자전적 소설 ‘외딴 방’에서 이와 같이 묘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신경숙은 서울역 풍경을 그렇게 묘사했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그날 새벽에 봤던 서울역 주변의 수많은 노숙자들을 잊지 못한다” 정도로 표현하지 않을까. 실제로 서울역을 오가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엄청난 수의 노숙자들을 보고 놀라게 된다. 서울역은 이제 노숙자들이 모여 저마다 화려했던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장소가 된 지 오래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소리쳐 떠들다가도 이슥해지면 혼자만의 숨겨놓은 공간으로 돌아간다. 신문지 속에 잠든 노숙인들은 그나마 행복하다. 누구는 핏발 선 눈빛으로 괜스레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또 누구는 구석에서 술에 취해 싸움판을 벌인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은 누구는 메마른 시멘트 벽에 기대어 그리웠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오래된 기침 소리에는 아득했던 순간들이 녹아있을 것이다. 집이 없어 본 사람만이 가정의 소중함을 아는 것일까. ‘즐거운 나의 집’의 노랫말을 지은 하워드 페인도 노숙자로 오랜 기간 곤고한 삶을 보냈다.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가사 중 한 구절인 ‘no place better than home’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사람이 노숙자 대책을 두고 뭐라고 훈수 두기란 쉽지가 않다. 노숙자, 얼핏 무슨 서부 영화의 제목 같기도 한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누구는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가 남긴 유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신자유주의가 안긴 최악의 선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서울역 홈리스들을 방치해 왔다. 단지 가정이 없다는 동정심에 핑계대어 그들을 지나치게 관대하게만 보아왔다. 심지어 공공 영역에서의 불편도 나만 잠시 피하면 된다는 생각에 방기해 오지 않았을까. 서울역의 밤은 노숙자로 살벌하다. 최근 코레일과 서울시가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대체공간을 내놓으라는 목소리도 거세다고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에서만큼은 노숙자들을 보는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들을 어디 아늑한(?) 다른 공간으로 모셔다 드릴 수는 없을까. 이름 없는 녹음마저도 꽃보다 아름답다는 “녹음방초 승화시절(綠陰芳草 勝花時節)”이지만 노숙자를 떠올리면 우울하기만 하다. 서울역, 밀려 떠나야 할 노숙자에 앞서 올해 여름이 먼저 떠날 채비에 서성이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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