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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펀더멘털과 센티멘털

중앙일보 2011.08.09 00:18 경제 8면 지면보기






박태욱
대기자




월요일 한국 증시가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개장 초 겨우겨우 버티는가 싶던 주가지수는 시간이 지나며 봇물 터지듯 무너져 버렸다. 환율도 관망세에서 뚜렷한 원화약세로,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주말, 9호 태풍 무이파의 북상과 함께 전해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금융시장이 단기적으로 힘든 상황을 맞을 가능성은 상당해 보인다. 어떤 기준에서 보건 세계 최대의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니 만큼 황망한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은 이해 가능하다.



 미국이 70년 만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란 달갑잖은 평가를 초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S&P가 추가 하향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짚은 ‘재정상태가 더 악화되거나’ ‘정치갈등이 더 심화되는 사태’에 대한 우려다. S&P의 이번 결정이 ‘용기’냐 ‘횡포’냐를 떠나,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재정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정략적 판단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됐다는 평가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특히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펴면서까지, 그동안 수십 차례 해왔고 어차피 했어야 할 채무한도 증액을 질질 끌어온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평가절하를 자초한 측면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하지만 S&P의 이번 판단이 실제로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중기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의 외환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우린 신용평가에 꽤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AAA건 AA+건 상환능력에는 극히 높으냐(extremely high) 아주 높으냐(very high)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 최상위 등급인 건 마찬가지다. 여전히 AAA를 유지하고 있는 10여 개의 국가가 있지만 상당수는 경제규모가 너무 작거나 재정상태에 미심쩍은 요인이 잠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등급산정 차이가 갖는 의미는 더욱 애매해진다. 게다가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발행권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자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미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60%를 넘는다는 사실, 그동안 미국이 제공해온 안정적 국채 이자를 포기하면서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자산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설령 매각을 결심할 경우 상당한 자산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사실,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대안이었을 유로화가 역내 재정위기로 비틀거리고 있는 현실 등을 감안한다면 얘기는 더욱 달라진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향은 대단히 의미 있는 사안이고, 장기적으로 달러 주도 세계경제에 가속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일인 건 맞지 싶다. 하지만 적어도 상당기간은 현 체제에 근본적 변화는 일지 않을 것이란 점 또한 현실로 여겨진다. 결국 S&P의 미국 국가등급 강등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요즘 세계경제가 비틀거리는 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이른바 더블딥에 대한 우려다. 지난주 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을 빚은 건 미국의 각종 성장·소비·생산 관련 지수의 불안한 모습이었다.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파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역시 최대의 관심사는 미국의 향방이다. 지난 주말 고용지표의 개선이 반짝 상승을 유도하긴 했지만, S&P 발표가 없었더라도 시장은 불안 기미가 완연했었다. 이번 주 발표될,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심리와 관련한 몇몇 통계가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의 투자심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지지만, 설령 부분적 호전이 감지된다 해도 추세적 움직임이 확인되지 않는 한 불안감을 씻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이다. 대외의존성이 매우 높은 우리의 경우 한동안 전개될 여러 변화 속에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일 것은 분명하다. 이런 때일수록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펀더멘털의 상황과 센티멘털의 영향을 나름대로 따져보면서 보다 냉철히 임하는 것, 혼돈의 시대엔 그게 약이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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