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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할 땐 웃음이 약” … 수첩에 ‘스마일’ 써놓고 플레이

중앙선데이 2011.08.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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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여제’ 자리 굳히는 대만 청야니







청야니는 요즘 옷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지난 1일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그는 흰색 카디건에 핑크색 피케 셔츠를 받쳐 입어 멋을 냈다. [중앙포토]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청야니(22·대만)가 1일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올 시즌 4승 가운데 2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장식했다. 통산 9승 가운데 메이저 대회에서만 5승을 챙기며 ‘메이저 사냥꾼’이라는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청야니의 외모를 보면 여제보다는 황제가 더 어울린다. 청야니는 2004년 US 여자 아마추어 퍼블릭 링크스 대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절정의 샷 감각을 자랑하던 ‘천재소녀’ 미셸 위를 결승전에서 꺾었다. 짧은 머리, 선머슴 같은 외모에 파워풀한 스윙을 보면 여자선수라고 믿기 어려웠다.



지난달 에비앙 마스터스 1, 2라운드를 함께 플레이한 유소연은 “예전에는 지금보다 머리가 더 짧았다. 처음 봤을 때 나도 남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엄청 수다스럽고 장난도 잘 쳤다.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을 좋아했고, 특히 가수 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프로가 된 뒤에는 의상에 상당히 신경 썼다. 청야니도 영락없는 여자였다”고 전했다. 유소연은 또 “예전에는 한 홀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 두렵지 않았다. 지금은 퍼팅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돌아갈 줄 안다. 많이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최나연과 절친 “음식 싸달라” 붙임성 좋아

청야니는 브리티시 오픈 때 야디지북(코스 정보가 기록된 수첩)에 ‘좋은 자세, 좋은 준비, 미소(good posture, good preparation, smile)’라고 적어 놨다.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던 청야니는 미소를 통해 인내를 배웠다. 그는 “긴장되고 실수가 나올 때 더 미소를 지으려 한다. 미소를 지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미소를 지으면서 인기도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야니는 대회 마지막 날 항상 핑크색 옷을 입는다. 예전에는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검은색을 선호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밝은 핑크를 더 좋아한다.



청야니의 성격은 어떨까. 유소연은 “한마디로 쿨하다. 자신의 실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끝난 뒤에는 실수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청야니는 중국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겨냥해 2500만 달러(약 265억원)를 제시하며 귀화를 종용했지만 ‘대만 골프의 역사를 쓰고 싶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미국 올랜도에 살고 있는 청야니는 이웃인 최나연과 가장 친하다. 요즘도 최나연의 집에 들르면 삼겹살·된장찌개와 함께 밥 두 공기를 해치운다. 최나연의 어머니 송정미씨는 “보기에는 무뚝뚝할 것 같은데 붙임성이 장난이 아니다. 넉살도 좋아 남은 음식은 싸 달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1989년 1월생인 청야니는 남녀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22세6개월8일)에 메이저 5승을 달성했다. 이런 추세라면 여자선수 메이저 최다승 기록인 15승(패티 버그)은 물론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보유하고 있는 남자 최다승(18승)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멘토인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퇴)이 가진 메이저 10승 기록도 시간문제가 됐다.



소렌스탐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은퇴)는 LPGA투어에서 ‘절대 지존’으로 군림해 왔다. 2008년 소렌스탐은 은퇴하면서 “앞으로 청야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3년 만에 그 예언은 현실이 됐다.



소렌스탐·오초아·청야니의 공통점은 ‘강력한 파워’다. 청야니의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 거리는 269.2야드로 1위다. 오초아는 2008년 평균 드라이브가 269.3야드, 소렌스탐은 268.1야드였다. LPGA투어는 몇 년 전만 해도 대회 코스 전장이 6300~6400야드였지만 최근에는 6500~6700야드로 200야드 이상 늘어났다.



청야니는 평균 타수에서 유일하게 60대(69.52타)를 기록하고 있는 등 그린 적중률(76.1%), 라운드당 평균 버디(4.8개), 톱10 진입률(69.2%) 등 거의 전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유일하게 페어웨이 적중률만 67.8%로 94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러프에서도 짧은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청야니의 가장 큰 무기는 ‘파워 페이드’(볼이 높이 뜨면서 마지막에 오른쪽으로 휘는 구질) 샷이다. 페이드 샷은 드로(왼쪽으로 휘는 구질) 샷에 비해 거리는 손해 볼 수 있지만 그린에 볼을 쉽게 세울 수 있다. 박원 J골프 해설위원은 “청야니는 볼은 왼발 쪽에, 머리는 볼 뒤쪽에 둔 상태에서 강하게 내려치는 파워 페이드 샷을 구사한다. 일반 페이드 샷보다 임팩트가 강해 거리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타이거 우즈도 파워 페이드 샷을 선호한다. 이 샷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섯 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은 청야니는 어려서부터 정교함보다는 파워에 초점을 맞춘 연습을 했다. 야구선수처럼 방망이로 타이어를 때리는 훈련을 통해 파워를 길렀다. 또한 남자선수들과 농구·테니스 등을 즐기며 근력을 다졌다. 청야니는 장타 비결에 대해 “어릴 적 코치가 방향과 관계없이 있는 힘껏 때리라고 주문했는데 그게 몸에 밴 것 같다”고 말했다. 



야구 방망이로 타이어 때리며 힘 길러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계) 선수들은 30명이 넘는다. 하지만 올 시즌 1승에 그치고 있다. 23년 동안 한국(계) 선수들이 합작한 승수는 99승이나 된다. 미국(1451승)·스웨덴(109승)에 이어 3위다. 하지만 박세리(34·통산 25승) 같은 강한 파워와 카리스마를 지닌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세리 키즈인 최나연·신지애·유소연 등이 활약하고 있지만 무게감이 떨어진다.



소렌스탐·오초아(이상 1m70㎝), 청야니(1m68㎝)의 체격은 한국 선수들과 비슷하다. 그럼, 왜 한국 선수들은 강력한 파워 플레이를 구사하지 못할까.



이병옥 J골프 해설위원은 치열한 주니어 경쟁 구도와 한국 골프장 특성이 이런 양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한국의 골프장은 산악 지형이 많다 보니 OB가 많고 언듈레이션도 심하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장타보다는 정교한 샷을 구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니어 시절부터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실수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둔다. 파워풀한 플레이보다는 스코어가 잘 나오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레슨도 임팩트, 체중 이동 등 파워보다는 안정되고 일관된 샷에 치중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정작 프로가 돼 거리를 늘리려다 리듬과 밸런스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거리는 물론 방향성까지 잃게 된다. 반대로 외국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부터 파워풀하고 과감한 플레이를 펼친다. 쇼트게임 역시 한국은 한두 가지 방법만을 집중적으로 연마해 스코어를 유지한다. 외국 선수들은 로브 샷, 러닝 어프로치, 칩 앤 런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샷을 시도한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파워를 줄이는 것은 쉬워도 늘리는 것은 어렵다. 앞으로는 파워 게임 시대다. 파워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승진 기자 tigers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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