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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한다”

중앙선데이 2011.08.07 02:12 230호 30면 지면보기
도로가 꽉 막힌다. 투덜대며 겨우 빠져나가면서 원인을 본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접촉사고를 낸 차 두 대가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운전자들은 드잡이질하거나 어딘가 전화하는 데 바쁘다. 차라도 치워 놓고 할 일이지…. 경황도 없고 화가 난 그들에겐 자기들 차 뒤에 늘어선 수많은 차량 행렬과 시간을 뺏기고 기름을 낭비하게 된 남들 모습은 눈에 안 들어올 것이다.

안성규 칼럼

남들 생각은 전혀 안 하는 이들을 보면서 사고 운전자에게 ‘다중피해 유발 벌금’을 듬뿍 안기는 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도로 사용은 자유지만 남들에게 피해는 못 주게 하자는 발상이다. 가만 생각하면 터무니없지도 않겠다 싶다. 도로에서 불법시위를 했다가 상인들에게 소송당하는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 발상을 점점 심해지는 안보 관련 갈등에 적용하면 어떨까.

4일 국방부는 미군이 고엽제를 묻었다는 옛 캠프 서머 기지(부천)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민·관·군 합동조사단의 단장인 가톨릭대 이상훈 교수에 따르면 다이옥신은 ‘소양강에 각설탕 반 개를 녹인 정도’고 고엽제는 없었다. 교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증언대로 묻혔다면 이렇게 농도가 낮게 안 나온다”고 했다. 5일엔 캠프 캐럴(왜관)의 고엽제 검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역시 없었다. 시민단체와 퇴역 미군의 문제 제기로 두어 달 소란스러웠는데 문제없이 끝나 다행이다. 그런데 캠프 서머의 조사에만 1억원쯤 국민 세금이 비용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국가기관들이 ‘싼값으로’ 20개 토양 시료를 검사해 줘서 그렇다고 한다. 이 돈은 ‘국민 의혹 해소비용’ 혹은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계룡대의 해군 본부 상황실에는 모니터 스크린이 있다. 스크린엔 한국의 이해가 걸린 해역의 선박이 표시된다. 물속 잠수정이 아니라면 동ㆍ서ㆍ남해안은 100% 파악된다. 해군의 상시 감시체계가 가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도 남부~이어도~그 아래 바다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상시 감시체계를 둘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함정이나 초계기가 현장에 갈 때만 그 해역의 상황이 파악된다. 감시를 못 하니 우리 해역 안에 다른 나라 군함이 들어와 있어도 알 수 없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한국과 중국ㆍ일본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방법이 없다. 해군은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하려는 해군기지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반대 논리 중 해안을 잃게 되는 마을 사람들의 아픔, 환경 파괴에 대한 걱정 등은 나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제주도에 군사기지는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다르다. 반대세력 대표인 강동균 마을 회장은 “평화의 섬 제주도에 군사기지는 안 된다”고 말한다. “파주ㆍ연천 같은 전방은 안보를 위해 희생하고 있지 않으냐”는 말에 “그런데 왜 하필 제주도고 강정이냐”고 한다. 안보 부담은 제주도는 빼고 다른 곳이 맡아야 된다는 얘기 같아 듣기 영 거북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부천·왜관 주민들이 고엽제에 대해, 강정마을 사람들이 해군기지에 대해 반대하고 의심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동체의 존망과 관련된 ‘안보’ 영역에서의 자유는 도로에서의 자유만큼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육지에서 제주도 강정마을로 밀려 들어온 100여 명쯤 되는 반대파는 ‘안보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군항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린다. 그러나 21세기 국가 안보를 위해선 군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국민의 목소리는 도외시되고 있다. 사고 차량 때문에 도로에 묶인 채 속으로 화만 삭이고 있는 수많은 운전자처럼 말이다. 평택 대추리로 미군기지 이전이 결정됐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 스님 한 분이 천성산 도롱뇽을 앞세운 단식투쟁을 벌여 고속철 공사가 중단됐을 때도 그랬다.

국가 안보 영역은 민간과는 차별을 둬야 한다. 민간업자가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토지 보상을 하는 것과 같을 수 없다는 얘기다. 왜 그러냐고? 우리가 분단된 땅에 태어나 살고 있기 때문에 예외 없이 군대를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소수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평가받아 온 측면이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한다’는 말이 있다. 이젠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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