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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소음 천국’ 코리아

중앙선데이 2011.08.07 02:07 230호 31면 지면보기
난 지난밤 지하철에서 왼쪽 옆자리에 앉았던 대학생이 여자친구와 싸운 걸 알고 있다. 앞자리 아주머니가 라면을 먹고 자 얼굴이 팅팅 부어 속상하다는 것도, 오른쪽 옆자리 아저씨가 공짜로 스마트폰을 새로 장만한 것도 안다. 물론 초능력자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목소리 데시벨을 한껏 높여 누군가와 휴대전화로 통화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어폰 없이 DMB를 시청하는 승객들 덕에 드라마 줄거리도 얼추 파악한다. 어떤 때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함께 ‘누가 누가 크게 말하나’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좀 과장해 말하면 대한민국은 가히 소음 천국이다.

On Sunday

요즘엔 글로벌 시대를 반영하듯 외국어도 자주 들린다. 며칠 전 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한 명과 동포 한 명이 탔다. 영어학원 강사인 듯 그들은 월급이 박하다고 소리 높여 떠들어댔다. 가까이 앉은 할머니 한 분은 이들을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도 지나치게 우렁찼지만 할머니의 시선도 만만찮게 따가웠다. 할머니의 시선을 의식한 두 사람은 “야, 저 할머니가 너한테 관심 있나 보다” “왜 저렇게 기분 나쁘게 째려보는 거야”라고 영어로 얘기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할머니가 외국인이든 누구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데 영어를 못해서 그러시는 건 아닐까, 할머니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막 생겨나고 있었다. 순간, 할머니가 말했다. “아따, 야그들 미국말 진~짜 잘하네. 신기허다!”

서울이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걸 반영하듯 이제 공공장소에서 들리는 언어는 영어뿐만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자기네 나라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선 조용조용 얘기하던 외국인들도 한국에만 오면 맘놓고 떠들어댄다. 게다가 외국인들 중 일부는 지하철 안에서 떠들어도 되는 게 한국의 문화인 것처럼 잘못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 전부 큰 소리로 통화하고 떠드는 걸 보니 그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온 내 친구 S는 “한국 지하철에선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지하철은 역과 역 사이에서 전파가 끊겨 휴대전화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급하면 지하철에서 내려 전화를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것 신경 안 써도 되니 편하다는 것이다. 어떤 미국 신문의 서울 특파원은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동방예의지국’은 아닌 것 같다”며 “젊은이들은 너무 시끄럽고, 노인들은 외국인을 대놓고 아래위로 훑어봐서 불쾌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도 소음 천국의 공범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에 갔을 때 친구와 나름 조곤조곤 얘기를 했는데도 주변에서 “왜 이리 시끄러우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일본처럼 지하철에서 전파를 끊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유는 누리되 자제의 미덕을 발휘해 보자는 거다. 외국인들로부터 “아무데서나 마음껏 떠들 수 있어 서울이 편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여자친구와 싸운 얘기, 라면 먹고 잔 얘기, 공짜로 스마트폰 산 얘기를 지하철에서 광고할 필요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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