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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대관령이 세계 울리는 날

중앙일보 2011.08.06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지난주 금요일 오후,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알펜시아 리조트 내에 위치한 알펜시아홀에서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었다. 하이든 현악사중주에 이어 ‘만남 I’이란 낯선 제목의 두 번째 곡이 연주될 차례였다. 지팡이를 짚고 부축까지 받은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무대 위에 나타난 나이 지긋한 분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곡 소개를 했다. 재독(在獨) 작곡가 박-파안 영희 선생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 독일에서 어렵게 공부할 때 문화적 충격에 몹시 혼란스러웠는데 마침 신사임당이 지은 ‘사친(思親)’이란 시를 읽고 스스로를 추스르며 이 곡을 썼다고 했다. 곡은 듣기에 편안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듣는 내내 만남과 소통의 깊은 근원을 느끼게 했다.



 #1504년 강릉에서 태어난 신사임당은 19세에 서울로 출가해 친정과 시가(媤家)를 오가려면 부득불 대관령을 넘어야 했다. 특히 어머니가 된 사임당은 어린 아들 율곡 이이의 손을 잡고 대관령을 넘곤 했다. 대관령을 넘어 친정으로 향할 때는 구름이라도 탄 듯 홀가분했겠지만 다시 대관령을 넘어 서울 시댁으로 향할 때는 늙으신 어머니를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는 것이 너무 힘겨워 어머니를 그리는 사친시를 온 맘으로 썼으리라. 지금도 대관령 옛길을 오르다 보면 옛 영동고속도로 구간과 마주치는 곳에서 ‘신사임당사친시비’를 만날 수 있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이런 사임당의 마음이 450여 년 후 이역만리 타국에서 문화적 충격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가난한 유학생의 마음에 잇닿아 ‘만남 I’은 작곡되었고 그것이 다시 40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12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는 지금의 대관령을 ‘대관(大關)’이란 이름으로 처음 불렀다. ‘큰 빗장’이란 뜻이다. 그만큼 대관령은 사람의 발걸음이 더디 오가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소통과 물량적 교류 자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옛사람들은 높이 832m, 길이 13㎞에 이르는 양의 장처럼 구불구불하고 험준한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 길을 힘겹게 오르내리고서야 보고픈 이를 만날 수 있었고 그리운 땅을 디딜 수 있었다. 그 대관령 옛길을 걷다 보면 원울이재(員泣峴)라는 곳을 지난다. 조선시대 때 강릉부사가 부임하면서 울고 떠나면서 울던 고개라 해서 원울이재다. 강릉으로 올 때는 한양에서 600리나 떨어진 멀고 먼 곳의 지방관으로 밀려난 것에 한탄하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는 그동안 정이 든 주민들과 그 인심을 못 잊어 울었던 게다.



 #이제 대관령은 또 다른 감동으로 우리를 울린다.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을 케빈 케너의 피아노와 정경화의 바이올린, 정명화의 첼로 연주로 멋진 앙상블을 펼칠 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새 예술감독이 된 정명화-경화 자매는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시던 곡이기에 더욱 더 혼을 다해 연주했고 그것은 듣는 모두에게 커다란 울림이 됐다. 다음 날 사흘째 계속된 연주에서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광기의 타건으로 가히 ‘열음(悅音)’의 경지를 펼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홍라희 여사가 흔쾌히 대관령국제음악제에 기증한 새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만남은 경이로운 울림 그 자체였다. 또 당찬 여성 지휘자 성시연이 자신의 색깔로 펼쳐낸 모차르트의 ‘레퀴엠’ 역시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감동의 울림이었다. 벌써 8회째 이어온 대관령국제음악제를 통해서 ‘큰 빗장’이요 거대한 닫힘의 상징이었던 대관령은 새로운 만남과 문화적 소통의 근거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이런 대관령에서의 격조 있고 깊이 있는 큰 울림이 더욱 퍼져나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모일 세계인들을 울리고 평창 겨울올림픽을 진정한 문화올림픽으로 만드는 근원과 바탕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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