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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읽기] 국가부도는 면했다지만

중앙일보 2011.08.03 00:14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부소장




미국을 국가부도의 위기로 몰아갔던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가 휴일까지 반납해 가며 격론을 벌인 끝에 부도 시한을 이틀 앞둔 일요일 밤에 가까스로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흡사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파국 직전까지 피 말리는 긴장과 불안감을 한껏 고조시킨 후 감격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스릴러의 구성을 빼다 박았다. 이것이 만일 영화였다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 치밀한 각본과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미국 정치권의 막장 대결과 막판 합의는 그런 칭송을 받지 못했다. 석 달여에 걸친 미국 정치권의 치킨게임을 지켜본 미국민과 여타 세계의 관객들은 오히려 진저리를 쳤다. 미국 정치권의 부채한도 협상이 가상의 흥밋거리가 아니라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잡고 실제로 벌어진 인질극이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미국민과 세계인을 다시금 경제위기의 수렁으로 빠뜨릴 위험이 다분했었다.



 어쨌든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국을 모면했다고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번 타협안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룬 시한부 연장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국가부채는 더욱 늘어나게 돼 있다. 이번 합의안은 다만 부채한도를 늘려 빚을 더 얻을 수 있게 해줌으로써 부도를 면하게 했을 뿐이다. 미국이 빚을 얻어 빚을 갚는 구조적인 악순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부채한도 증액의 조건으로 합의한 재정적자 감축 규모가 시장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하다. 합의안은 앞으로 10년간 재정지출을 2조4000억 달러가량 줄이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이 현재의 최고 신용등급(AAA)를 유지하려면 재정적자를 4조 달러는 줄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부도는 면했지만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 일각에선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더라도 시장에 미칠 영향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에서 미국 국채를 대신할 만한 투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한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 정부나 기관투자가들이 미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고 당장 미국 재무부 증권을 내던지거나,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 국채의 보유 비중을 줄이고 다른 대체투자 대상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되면 미국 국채가 영원히 안전자산으로 남아있지는 못할 것이고, 미국이 언제까지나 빚을 늘려갈 수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의 경제적 우위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냉엄한 현실에 대한 경고장이다.



 이번 합의안을 두고 미국 공화당 쪽에선 당내 보수세력인 ‘티 파티의 위대한 승리’라며 ‘부채한도 증액 협상’의 성공을 자축하는 분위기다. 티 파티의 요구대로 세금은 올리지 않고 재정지출만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부도라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 쪽에선 ‘비참한 굴복’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부도도 불사하겠다는 공화당 강경파의 위협에 밀려 자칫하면 최악의 경기침체를 불러올지 모르는 합의안에 동의해 줬다는 것이다. 국가부도를 놓고 벌인 치킨게임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막판에 약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문제는 미국의 정치권이 나라의 명운을 걸고 벌인 대결이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이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부채한도 증액과 관계없이 미국경제는 다시금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써 온 온갖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실업률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부도를 피한 것에 대한 안도보다는 미국경제가 더블딥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 미국이 부채한도를 올려 부도를 면했다고 해서 미국의 성장률이 높아지거나 실업률이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채한도 증액을 놓고 미국의 정치권이 몇 달 동안이나 죽기살기로 싸워 왔다는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년 선거를 의식해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자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무익한 싸움을 벌여온 것이나 진배없다. 문제는 그런 목적으로 판을 벌이기에는 국가부도라는 판돈이 너무 크고 위험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권이 표면상으로는 타협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념적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내년 미국 대선까지 이런 식의 대결이 계속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침체로 빠져들고 있는 미국경제가 회복할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며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미국마저 정치권의 대립 때문에 경제가 망가진다면 내년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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