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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없으면 다른 차에서 뽑아서라도 수리해줬다”

중앙선데이 2011.07.30 23:49 229호 20면 지면보기
세 사람 모두 다른 나라에서 각자의 이력을 쌓았지만 성공 DNA는 같았다. “일을 맡기면 책임지고, 한 발 앞서 애프터서비스(AS)를 했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현지 기업이 됐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직원 대부분이 현지인인 것도 공통점이다.

국내 증시 진출 한상(韓商) 3인 인터뷰 … 우리 성공 비결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코라오디벨로핑 직영매장.
오세영 회장은 90년 진출한 베트남에서 두 번의 사업 실패를 겪은 뒤 97년 라오스로 건너가 재계 1위 기업을 일궜다. 코라오그룹은 라오스 국민기업으로 불린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조립·판매하는 코라오디벨로핑을 비롯해 은행·건설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라오스 내에서 자동차 점유율은 50%, 오토바이 점유율은 40%를 넘는다. 한국에 상장한 기업은 코라오디벨로핑의 지주사인 코라오홀딩스다. 지난해 그룹 매출은 3억4000만 달러(약 3700억원)이며 직원 수는 4000여 명이다.

미국 오클랜드의 뉴프라이드 사업장.
김은종 회장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뒤 72년 미국으로 이민 가 78년 뉴프라이드를 설립했다. 이후 33년간 경영하고 있다. 뉴프라이드는 선박에서 컨테이너를 내려 트럭으로 기차에 싣고 미 대륙을 건넌 뒤 다시 트럭에 실어 목적지에 배달하는 복합물류(인터모달·Intermodal) 사업을 한다. 이 분야에서 미국 내 업계 1위 사업자다. 워런 버핏이 소유한 철도회사 BNSF의 복합물류 사업도 뉴프라이드가 60%를 담당하고 있다.

이규성 회장은 중국이 산업화에 불을 지피던 91년 양말과 섬유 공장을 지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설립한 공장만 100개가 넘는다. 그러다가 사업 파트너의 추천으로 태양광 사업에서 기회를 잡았고, 2006년 50살의 나이에 성융광전투자를 창업했다. 2008년 200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680억원으로 늘었다. 직원은 1200명이 넘는다. 태양전지 분야에서 중국 내 6위, 전 세계 20위 회사로 성장했다.
 
-낯선 땅에서 성공한 비결을 듣고 싶다.
오세영 회장=처음 라오스에 갔을 때 국민들에게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워낙 ‘짝퉁’이 많아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언론 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라오스의 특성도 작용했다. 글로벌 브랜드가 언론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일대일로 부딪치면서 직접 눈으로 품질을 확인시켜주면 글로벌 기업과 맞붙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AS 부품이 없으면 다른 차에서 뽑아서라도 도요타보다 빨리 수리를 해줘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라오스에서 살다 죽을 거라는 각오로 애정을 갖고 사업을 하니까 현지인들이 진정성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중국 장쑤성 장자강시의 성융광전투자 공장.
이규성 회장=90년대 초반만 해도 섬유 기계 시장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잡고 있었다. 한국의 섬유 기계 성능은 훨씬 뒤처졌다. 기술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차별화된 AS로 승부했다. 독일 등은 AS를 신청하면 일주일이 걸렸지만 우리 회사는 하루 만에 기계 고치는 시스템을 갖췄다. 공장 기계 가동률이 100%가 될 수 있도록 매일 비행기를 띄워 한국에서 부품을 공수했다. 결국 3년 만에 업계 1위에 올랐다. 그 정신이 성융광전투자에서도 이어져 오늘날까지 왔다. 난 젊은 시절부터 영어는 잘하지만 중국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다. 웬만한 자리에선 통역을 썼다.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던 건 100%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확신을 줬기 때문이다.

김은종 회장=미국 한인사회에 이런 농담이 있다. 공항에 처음 도착할 때 마중 나간 사람의 직업이 평생 자신의 직업이 된다는 것이다. 뚜렷한 목적 없이 오게 되면 결국 영어 한마디 안 하고 한인 사회에서만 살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미국 현지인들의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도전했다. 샌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오클랜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무조건 납기를 잘 맞추고 가격과 품질도 최고의 조건을 유지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입소문이 나서 미국 최대 철도회사인 유니언퍼시픽과 독점적인 계약을 맺었고, 이후 BNSF와도 계약하게 됐다.

-해외에서 자리 잡았는데, 한국 증시에 상장한 이유는.
이 회장=원래는 독일 증시에 상장하려 했다. 독일의 태양광 산업이 무척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독일 증시가 안 좋아졌다. 그때 바로 한국 증시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홍콩도 생각해봤지만 내가 한국 사람인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더 대접해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상장 할 때 원했던 자금을 조달했다. 상장 이전에 200㎿ 규모였던 공장을 지금은 3배인 600㎿로 늘렸다. 한국에 상장한 덕분이다.

오 회장=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싱가포르 증시에 갈 수도 있었다. 싱가포르는 같은 아세안 소속 국가이기 때문에 라오스를 잘 안다. 따라서 주식가치를 더 높게 쳐 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내가 성공하는 데 있어 한국 사람이란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코라오(Kolao)란 이름도 코리아+라오스의 합성어다. 전 세계 176개국에 700만 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이들과 한상 기업에 희망의 성공 모델이 되고 싶었다. 국내 투자자들은 한상 기업을 통해 해외투자 효과를 높이고, 한상 기업은 모국에서 투자받은 양질의 자금으로 해외에서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가장 좋은 ‘윈윈 프로그램’이다.

김 회장=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영속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회계 등에 있어 투명 경영이 필요했다. 그런데 미국 나스닥은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상장 비용도 많이 든다. 반면 한국의 코스닥은 주식 거래가 활발해 자금 조달이 원활하다. 상장 비용도 나스닥보다 훨씬 적다. 내 고국이라는 점이 한국행에 있어 큰 결정 요인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의 꿈은 뭔가.
오 회장=코라오그룹이 20~30년 후에는 동아시아에서 1등 하는 기업이 되도록 하겠다. 라오스는 내게 기회와 성공을 준 너무 고마운 나라다. 나중에 은퇴하면 라오스 교육을 위해 일하고 싶다. 라오스는 아직도 지방으로 가면 문맹률이 높다. 농담 삼아 라오스 정부에 나한테 명예 교육부 차관 자리 한 번 달라고 했다. 꼭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라오스에 외국 유명 대학을 유치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교육 허브로 만드는 게 꿈이다.

이 회장=한국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 것이다. 2, 3년 안에 50개를 만들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성융광전투자가 나 없이도 자동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싶다. 100년 가는 태양광 기업이 되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살기 위한 공부만 하며 살아온 듯하다. 앞으로는 죽는 공부를 하며 살려 한다.

김 회장=내년, 늦어도 2013년까지 회사가 매출 2억 달러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내 미국 생활은 뉴프라이드와 함께 커 왔다.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기업이다. 향후 꿈은 회사가 점점 발전해서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또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부산항에서 물건을 기차로 옮겨 북한, 중국을 거쳐 유럽 파리에 도착하는 과정의 복합물류 사업을 해봤으면 좋겠다.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높지만 주가는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성융광전투자는 지난해 말 한때 공모가(2800원)보다 264% 오른 1만200원을 기록했으나 이후 하락해 29일 주가는 공모가보다 7.9% 높은 수준이다. 뉴프라이드는 상장 당시보다 주가가 72% 하락했다. 코라오홀딩스는 상장 후 한동안 약세를 면치 못하다가 올해 봄부터 상승했다. 현재는 주가 8000원으로 공모가(4800원) 대비 66.7%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상 기업의 들쑥날쑥한 주가 흐름에는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한국 기업보다 정보가 부족한 한계점이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한상 기업이 국내 증시 상장에 성공하려면 기업과 투자자가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이 요구된다.

손원민 KTB투자증권 글로벌금융팀 상무는 “한상 기업은 기대치를 낮추는 대신에 상장 후 기업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투자자들도 모든 걸 한국 기업과 똑같이 비교하겠다는 생각에서 한발 물러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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