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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소치, 세잔과 겸재가 교감 … 해학 대가 김홍도 환생 보는 듯

중앙선데이 2011.07.30 23:33 229호 27면 지면보기
모네와 소치의 대화, 10min, 2008
오랜 장마가 갠 오후의 남도는 더욱 운치 있었다. 두둥실 뭉게구름 아래로 옹기종기 내려앉은 산야(山野), 그 어느 곳에 프레임을 갖다 대도 아름다운 풍광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들의 사투리처럼 정겹고 부드러운 호남의 예향(藝鄕)이 나를 맞았다. 광주에 한 작가가 사는데 그가 백남준의 후예라는 소문이 있다.

시대의 안테나, 디지털 아트 <5> 디지털 내추럴리스트 이이남

“오메, 겁나 덥지라이. 싸목싸목 오시랑께….” 수줍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왔다. ‘세한도’의 고적한 초가삼간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한 세대쯤 묵은 허름한 집을 상상했던 필자에게 청담동 갤러리 분위기의 작업실은 약간 당혹스러웠다. 넓고 세련된 공간에 적절히 배치돼 있는 LED 모니터에는 작가의 대표작들이 흐르고, 도서관 같은 스튜디오는 동서고금의 이미지들이 담긴 화집과 책들로 마치 작은 알렉산드리아를 방불케 했다. 한쪽 벽면에 빽빽이 붙어 있는 온갖 종류의 메모들만 보아도 그의 정신세계가 동양화나 디지털에만 머물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전남 담양 출신 이이남은 조각을 전공했다. 어느 날 우연히 애니메이션을 보고 ‘살아있는 조각’에 매료되어 디지털 영상작가로 변신했다. 2000년께란다. 신사임당의 ‘표충도’에서 나비를 이리저리 날게 하고, 모네의 연못 속 물고기를 뛰어오르게 하고, 김홍도의 ‘묵죽도’엔 하염없이 하얀 눈을 날리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농사일을 하면서 작업한 그에게 자연은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도시적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휴식을 주고 싶다고 이이남은 소박하게 말한다.

달항아리 풍경, 5min30sec, 2008
그러나 그의 작업에는 쉼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우리 눈에 익은 동서양의 명화들을 차용해 그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이음매 없이 미끄러지듯 매개한다. 모네의 ‘해돋이’와 소치(小癡) 허련의 ‘추경산수화’가 만나 교감하고, ‘겸재 정선과 세잔’에서는 겸재가 1741년께 그린 남산의 풍경과 세잔이 1904년께 그린 생 빅투아르 산이 겹쳐진다. 아, 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단순한 디지털 몰핑 기술이 아니다. 자연의 본질을 각각의 방식으로 추구한 겸재와 세잔을 병치한 작가의 선택이었다.

돌연 분위기가 변했다. ‘09 금강전도’에는 고요한 금강산 산등성이에 전투기 헬리콥터들이 하나 둘 요란한 소음과 함께 등장한다. 곧이어 산 전체가 폭격을 받은 듯 연기가 자욱하다. 또 ‘박연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어느새 지폐들이 떨어지는 돈 줄기로 변해버리고, 미의 상징 모나리자가 지독한 뚱보로 바뀌는 모습, 그리고 선비의 절개를 붓끝에 세운 ‘세한도’ 한쪽 끝으로 보잉 747이 아련히 등장한다. 해학의 대가 김홍도의 21세기적 환생을 보는 듯하다.

백남준 예견한 ‘TV 미술관’ 시대를 개척
디지털 시대의 복제예술에 대한 유머도 볼만하다. 예컨대 고흐의 자화상을 개미가 조각조각 뜯어내 화면 밖으로 물고 와 옆 화면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오리지널과 구분이 없는 디지털 복제를 왜 하필 개미의 수고로 표현했을까? 개미가 입으로 물고 올 만큼 가벼워진 예술의 무게를 말하고 싶은 걸까?

순박한 미소가 어울리는 농부 작가 이이남. 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어느 미디어 작가보다 발 빠르게 새로운 미디어의 예술적 용도를 간파해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유수의 전자회사와 함께 5000대 한정판으로 LED TV에 자신의 사인을 넣고 서버를 통해 작품을 ‘서비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여러 대가 팔려 나갔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도 이이남의 작품들이 소비되고 있다. 1980년대 백남준이 예견한 ‘TV 미술관’이 광주의 한 작가에 의해 조용히 실현되고 있었다. 백남준은 거실 TV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날이 곧 올 것이라 했었다.

“무봉탑(無縫塔)을 만들고 계시네요.” 벽면에 이어진 LED 스크린 사이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이미지들의 합창을 바라보다가, 내가 불쑥 내뱉었다. “무봉탑요?” 이 작가가 처음 듣는 표정으로 묻는다. “백남준 선생이 생전에 꿈꾸었던 세계, 이음(縫)이 없는 하나의 완전하고 아름다운 총체, 시공의 분리가 없는 우주의 본체… 그러나 욕심 많은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탑!” 벽암록에서 당나라 혜충국사가 설파한 무봉탑은 백남준 예술의 이상향이자 지향점이었다.

백남준에게 미디어는 무봉탑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 쓸데없는 벽들과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인 예술 병기(兵器)로 그는 미디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정보수퍼하이웨이의 도래와 함께 경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미디어 아티스트가 앞장서길 원했던 백남준. 그의 예술혼이 한 세대를 건너 이이남의 작업실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걸까?

갯벌에서 진주를 발견한 듯 몸을 떠는 나에게 이 작가가 조용히 말했다. “너무 글지 마씨요. 인자 내가 뭘 원하는지 알둥말둥 한디… 실은 명작들 뒤에 숨은 야그들을 드러내고 싶어라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귄 있게 소통하게… 그란디라 예전에 없던 욕심이 하나 둘 생겨나서, 그것이 고민이구만이라. 사람이 이라믄 안 된디….” 산업과의 연계를 무시할 수 없는 21세기 미디어 작가로서 솔직함과 겸비함을 지닌 이이남의 앞날에 나는 기대를 건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남도의 산하가 더욱 푸르게 빛났다.

<※이이남 작가의 홈페이지 www.22nam.com에서 관련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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