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대인 끼의 결정체, 첫 음반 1200만 장 ‘폭풍 인기’

중앙선데이 2011.07.30 23:24 229호 28면 지면보기
재즈는 미국 대중음악의 샘물과 같다. 목화밭 노동력 공급을 위해 잡혀온 아프리카 흑인노예의 애환이 담긴 재즈는 1835년께 뉴올리언스시 콩고광장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즈가 미국 대중음악으로 자리잡은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초기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재즈가 출현했다. 베니 굿맨의 스윙, 듀크 엘링턴의 블루스, 마일스 데이비스의 쿨재즈와 퓨전재즈, 자비에르 쿠갓의 라틴재즈, 루이 암스트롱의 딕시랜드 등이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크로스오버 재즈의 명인 케니 지

앨 자로, 조지 벤슨 그리고 프랑스 재즈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은 크로스오버 재즈(Crossover Jazz)의 선구자들이다. 크로스오버의 사전적 의미는 교차, 융합이다. 이 단어가 음악에서 사용될 때는 주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문 음악 또는 한 가지 조류에 여러 장르를 섞은 혼합형을 말한다.
크로스오버 재즈는 대체로 부담 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스무스 재즈(Smooth Jazz) 성향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장르를 합친 재즈아티스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6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수차례 내한공연을 한 유대인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Kenny G:본명은 Kenneth Gorelick)다. 케니 지 외에도 근대 재즈의 발전에는 많은 유대인 대가의 참여가 있었다. 베니 굿맨, 아트 호데스, 아티 쇼, 지기 엘먼, 해리 제임스, 버디 리치, 마이크 블룸필드, 앨 코헨, 허비 맨, 스탄 게츠 등은 미국 재즈 역사와 맥을 같이한 유대인 재즈아티스트들이다.

몇 차례 내한 공연, 한국 판매 총 600만 장
케니 지는 1956년 워싱턴주 시애틀 교외에서 태어났다. 동유럽 유대인 가계 출신이다. 관악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열 살 때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는 흑인 작곡가이며 가수, 음반제작자인 배리 와이트가 73년 조직한 40인조 악단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의 단원으로 합류해 연주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워싱턴 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에는 전공을 버리고 아예 직업연주자로 나선다.

82년 솔로주자로 독립한 그는 유대인 연예흥행사 클리브 데이비스가 74년 설립한 아리스타 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는다. 케니 지는 주로 소프라노 색소폰을 불지만 다른 두 가지 색소폰(알토·테너)과 함께 플루트와 클라리넷도 연주한다. 82년 첫 앨범 발매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앨범 ‘브레스리스(Breathless)’는 무려 1200만 장이나 팔린 다이아몬드앨범이다. 판매고 100만 장급은 골든디스크, 1000만 장급은 다이아몬드 디스크로 각각 부른다.

94년 앨범 ‘미러클(Miracle)’도 미국 대중음악 인기순위를 정하는 빌보드 차트에서 수주간 1위를 차지했다. 케니 지는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전통재즈, 모던재즈, 흑인영가, 클래식소품, 록 발라드, 소울, 리듬 앤드 블루스, 라틴리듬, 아일랜드 민요,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망라한다.

우리는 ‘색소폰’ 하면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어두컴컴한 카바레에서 불어대는 느끼한 음색의 알토 색소폰을 연상한다. 그러나 케니 지는 피리와 모양이 비슷한 소프라노 색소폰을 주로 연주하면서 청아한 음색과 밝은 분위기의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의류광고 삽입곡인 고잉 홈(Going Home)과 송버드(Songbird) 등 두 곡으로 케니 지는 무드음악을 좋아하는 한국 팬들과 특히 친숙해졌다. 또한 그는 고교 시절부터 골프광이었다. 프로선수에 버금가는 골프 실력으로 많은 대회에 참여하면서 몇몇 한국 프로골퍼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다고 한다.

청중에게 최선 다하는 겸손함 돋보여
유대인들이 엔터테인먼트 전 부문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예산업계에 종사하는 유대인들은 대중의 감성을 잘 간파한다. 또 탈무드 교육의 영향으로 창의력도 남달라 항상 새로운 조류를 창조해 낸다. 이들은 특히 문화·예술인의 재능을 효과적으로 흥행에 연결시킨다. 영화와 TV는 물론 클래식뮤직, 뮤지컬,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인재를 길러내고 부를 창출한다.

특히 장래성 있는 유대인 신인을 발굴하는 혜안을 갖고 있다. 재능만으로는 성공을 기약하기 어려운 이들 신인들을 훈련시키고 지원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려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투자한다. 유대인 작곡가와 연예흥행사도 동원된다. 유대인 소유의 음반사와 아울러 유대인이 주류를 이루는 각종 미디어도 활용한다. 미국 3대 지상파TV 방송인 ABC, CBS, NBC는 유대인이 설립했고, 지금도 이들의 영향력이 강하다. 역시 유대인이 설립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양대 유력지를 비롯한 유대계 활자매체도 많다.

케니 지의 공연을 보면 그는 분명 재능 있는 음악인임을 알 수 있다. 발군의 연주 기량과 함께 대중에 대한 친밀감 또한 돋보인다. 정상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에게 흔히 느낄 수 있는 오만함도 없다. 항상 청중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최선의 자세를 보인다. 시대도 잘 타고나야 한다. 케니 지의 출현은 펑크, 하드록, 디스코, 헤비메탈 등 귀 따가운 음악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을 이지 리스닝 뮤직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시대조류의 변화를 읽고 케니 지 같은 탁월한 대안을 찾아낸 것은 미국 대중음악계를 선도하는 유대인 고수들의 숨은 조직적인 힘이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케니 지와 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유대인의 특기 중 하나를 압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