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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도 지나치면 병

중앙선데이 2011.07.30 23:10 229호 31면 지면보기
최근 발생한 노르웨이의 테러 사태는 ‘집단사고(思考)’가 개인에게서 발현된 특성을 지닌다. 어빙 재니스가 처음 제안한 집단사고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집단자살 사례처럼 내부의 신념이 매우 강한 상태에서 외부 정보와 차단된 채 집단의 암묵적 동조 압력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내부 정보에만 함몰돼 있다 보면 외부의 객관적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자신의 처음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어 마침내 위험한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특히 자신감 넘치고 응집성 강한 집단에서 이런 왜곡된 사고양식이 작동하기 쉽다.

원래 집단 의사결정 과정 중 동조 압력 때문에 생기는 비합리적 집단사고 과정은 한 개인의 사고 과정 속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 개인이 이상적이라고 추구하는 집단과 지나치게 동일시하다 집단의 신념이 개인의 신념으로 공고화되었을 때다. 노르웨이 테러범이 십자군 원정을 동경하며 테러를 자행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전통 유럽의 기독교 근본주의 집단에서 찾은 ‘집단정체감’에 기인한다.

집단정체감이 강할수록 자기 집단에 대한 자긍심이 강해져 다른 집단을 무시한다. 더 나아가 다른 집단을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테러범이 무슬림과 페미니즘을 증오했다는 것은 자신을 무슬림의 대립집단인 기독교 극우주의 집단, 그리고 페미니즘의 대립집단인 남성우월주의 집단과 동일시했음을 의미한다. 즉, 그의 신념은 유럽의 전통가치와 기독교, 순혈주의, 및 남성우월주의로 요약된다. 단일민족이면서 남성우월주의적인 한국을 동경한다니 과연 기뻐해야 할까.

집단과의 동일시에 근거한 개인의 극단적인 행동은 그 집단의 신념이 어느 쪽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노르웨이 극우 테러리스트의 행적이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예일대 사회심리학자이며 정치학자였던 로버트 에이블슨은 ‘확신’에 가까운 강한 신념을 구성하는 세 요인이 자아 몰두, 감정적 개입, 인지적 정교성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종교적·정치적 신념은 사람들이 강하게 지니고 있는 신념들이다. 이런 신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존재 이유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그래서 늘 그에 대해 생각하는 자아 몰두, 그에 관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감정적 개입, 그리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오랫동안 신념을 유지해 온 인지적 정교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자기가 가진 정보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득에 대한 저항도 강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위험성도 높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용이다. 관용은 자기 신념의 포기나 패배가 아니라 신념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 더 많은 것들을 포함하는, 그래서 대립되는 신념까지도 함께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자기 신념을 유지할 자유가 있다. 어느 한 쪽의 신념을 강하게 지니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신념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용력과 관용을 상실한 신념은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결국 도태됨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이고 존중받아야 할 개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집단의 자기 신념이 다른 모든 신념들을 누르고 지배하기를 바라며 획일화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관용의 정신에 위배된다. 장미꽃으로 덮인 오슬로의 추모행사는 인류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말해 준다. 인류는 뭔가 지나치다 싶으면 조절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나은영 서울대 학사·석사, 예일대 사회심리학 박사. 최근 쓴 저서 『미디어 심리학』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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