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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대학살 이후 유럽 정치지형 변하나

중앙일보 2011.07.30 00:14 종합 12면 지면보기



팽창하던 극우당 주춤
좌파 세 불리기 잰걸음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의 연쇄 테러 이후 일주일 만에 노르웨이의 각 정당에 수백 명의 시민이 가입했다. 하지만 모두가 브레이빅이 테러 타깃으로 삼았던 집권 노동당에 가입한 것은 아니다. 브레이빅이 한때 몸담았던 보수 우파 진보당에도 487명이 가입했다. 사회주의좌파당도 290명의 ‘새내기’를 맞았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 방향은 나뉘었다. 노동당은 집계를 하지 않았다며 신규 당원 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처럼 브레이빅의 테러는 노르웨이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정치지형에도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먼저 그동안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던 극우파는 일단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우퇴야 섬 학살의 이념적 배경이 극우민족주의로 나타나면서 당분간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테러 직후 우파 정당들은 일제히 브레이빅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놓으며 ‘거리 두기’ 행보를 보였다. 브레이빅이 활동했던 진보당은 “노르웨이 사회의 원칙과 가치에 반하는 끔찍하고 비열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그가 “유럽 유일 진짜 보수 정당”이라고 말했던 네덜란드 자유당도 브레이빅을 혐오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극우세력은 며칠 뒤 다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북부동맹’의 마리오 보르게지오 유럽의회 의원은 “폭력적인 부분만 빼면 브레이빅의 아이디어는 훌륭하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영국수호동맹(EDL)의 스티븐 레넌은 “노르웨이 테러는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유럽의 증가하는 분노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좌파 정당들은 이번 사태를 바탕으로 세를 불리려 하고 있다. 현재 서유럽 대다수 국가에서는 보수 우파 정당들이 집권하고 있다. 좌파 정당들로서는 이번 기회에 특히 극우파와 협력관계에 있는 중도 우파 정권을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공도 예상된다. 파스칼 페리노 파리정치대 정치연구소장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당들은 자칫 이번 비극을 이용하려는 것처럼 보일까봐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고 봤다.



 테러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다. 지속적 경기 침체에 이어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이민자들이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빼앗아 간다는 의식 때문이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유럽 각국에서 부르카·히잡·첨탑을 금지하는 등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우파 포퓰리즘 제스처는 이런 경향을 부채질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유럽 주요국의 지도자들도 다문화주의 실패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CNN의 표현대로 노르웨이 테러는 “극우주의가 르네상스를 이룬 시점에” 발생한 것이다. 랑발 칼레베르그 오슬로대 사회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유럽 전역에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노르웨이 국민들은 힘든 시간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전희원·이태규 인턴기자(숙명여대 언론정보 4년·한국외대 영문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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