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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조종 울린 ‘중국 속도 신화’

중앙일보 2011.07.30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시간이 곧 돈이고, 효율이 곧 생명이다(時間就是金錢 效率就是生命).”



 광속으로 질주해 온 중국의 초고속 성장 신화를 압축한 표현이다. 이른바 중국 속도(china speed)다. 이 구호를 처음 만든 사람은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아니라 위안겅(袁庚·원경)이다. 그는 중국 최초의 선전(深?) 경제특구에서도 첫 실험지로 불렸던 서커우(蛇口)공업구관리위원회 주임을 역임했다.



 시간, 즉 속도를 강조한 이 구호는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간 중국 사회를 풍미했지만 탄생 초기에는 상당한 논란을 겪었다. 1982년 위안이 이 구호를 담은 대형 광고판을 처음 서커우에 내걸자 계획경제 방식을 고수해 온 ‘보수 좌파’들은 “자본주의 방식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하려 한다”며 비난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라는 성사성자(姓社姓資) 논쟁도 벌어졌다.



 84년 1월 이뤄진 덩의 서커우 시찰은 반전의 계기를 제공했다. 위안은 구호를 새긴 대형 입간판을 밤새 만들어 덩이 탄 차량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내걸었다. 다음날 위안이 경위를 보고하자 덩은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를 계기로 이 구호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들불처럼 중국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사흘 만에 한 개 층을 완성했다는 선전국제무역빌딩(53층)의 ‘삼천일층루(三天一層樓) 신화’도 그 무렵에 만들어져 ‘선전 속도’의 대명사가 됐다. 수많은 중국 속도전의 신화들이 우후죽순처럼 양산됐다. 중국 사회는 세계 최대, 세계 최다, 세계 최장 등의 수식어에 최면이 걸렸다. 속도전이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속도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은 마침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과속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23일 발생해 40명의 생명을 앗아간 원저우(溫州) 고속철 추돌사고는 중국 사회의 속도 신화가 무너지면서 ‘뒤늦게 배달된 청구서’ 같은 사건이다. 사고 뒤처리 과정에서도 속도에 대한 중국 사회의 맹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잔해 속에 두 살배기 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데도 고속철 재개통에만 집착하는 구태를 보여줬다. “인명 구조를 최우선시하라”는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의 지시는 현장에서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네티즌의 비난처럼 속도와 성과만 중시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물신(物神)주의가 만연한 때문이다.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는 28일 고속철 참사 현장에서 이례적인 참회록을 썼다. 그는 “중국 고속철이 수년간 발전했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고 희생자들은 정부의 가장 큰 책임이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고백했다. 단지 고속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속도를 강조하는 구호를 처음 만든 위안은 “안전이 곧 법이고, 고객이 곧 황제다(安全就是法律 顧客就是皇帝)”라는 구호도 당시에 만들었으나 제대로 유행하지 못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속도 신화가 무너진 지금 중국 사회는 “안전은 생명이다”라는 교훈을 얻는 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속도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청구서는 또 날아올 것이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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