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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기소저(奇小姐)와 고려양(高麗樣)

중앙일보 2011.07.26 15:15
한국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계에 김연아의 한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이영애의 대장금이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석권하였고 “소녀시대”등 한국의 걸 그룹이 아시아를 휩쓸고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고 있다. 한국의 딸들이 만든 한류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700년전 당시 세계의 으뜸제국인 원(元)에 “고려양(高麗樣)”이라는 한류의 원조가 있었다. 고려양을 만든 인물 또한 한반도의 딸이었다. 원의 황후가 되었던 기소저(奇小姐)의 이야기가 전한다.



원의 침략을 받은 고려는 원에서 부족한 여인을 공물로 바치고 있었다. 기소저는 한강 하류 행주(幸州)의 세도가 기씨 문중의 딸로써 공녀가 되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기소저가 간 곳은 원의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北京)이다. 그녀는 미모에다 총명하여 고려 출신의 환관의 도움으로 황제의 차 시중을 드는 궁인이 되었다.



원의 황제(순제)는 고려에서 온 기소저를 총애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11세 때 황실간의 세력다툼에 희생이 되어 멀리 고려의 대청도에 유배되어 1년 6개월을 고려인과 지낸 특이한 향수가 있었다.



황제는 태자를 분만한 기소저를 황후가 되도록 하였다. 기 황후는 황실의 여러 가문의 세력 다툼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원이 고려를 중국의 일개 지방(省)으로 만들려는 것을 막아 냈다. 오히려 원의 황실에 고려의 아름다운 풍습을 전파시켰다. 중국에는 고려의 세련되고 선진적인 문화가 존경받게 되었다. 당시 원에 유행한 고려의 유행을 고려정이라고 하였다.



기 황후는 원의 중흥을 위해 무능한 황제를 퇴위시키고 황태자를 통하여 개혁정치를 하고저 하였으나 황제의 비협조로 타이밍을 놓쳐 개혁에 실패한다. 결국 원의 황실은 홍건적에서 시작한 명(明)에 의해 대도를 빼앗기고 팔달령(八達嶺)을 넘어 몽고고원으로 달아나야 했다. 실의에 빠진 奇황후는 고려의 아름다운 청산(靑山)을 그리면서 삭막한 몽고초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청산에 살으리랐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랐다”라는 청산별곡은 그 무렵 고려정을 가져다 준 기 황후가 즐겨 불렀던 고향의 노래였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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