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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67) 독수리의 친구들

중앙일보 2011.07.26 00:04 종합 22면 지면보기



이만희·문희·송재호 … 최고의 짝을 만나다



신성일·문희가 주연한 영화 ‘흑맥’(1965) 포스터.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인 문희의 데뷔작이다. 아쉽게도 필름은 남아있지 않다.



마음이 맞는 파트너를 만나면 실력을 120% 발휘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만희 감독”을 꼽는다. 그와 처음 만난 영화가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이문희 작)을 각색한 ‘흑맥(黑麥)’(1965)이다. ‘흑맥’(검은 보리)은 당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썩은 보리’라고도 했다.



 1960년대 서울역 맞은편(현재 대우빌딩 자리)은 집창촌이었다. 그 부근의 염천교는 호객 행위를 하는 입구였다. 나는 서울역 집창촌 뒷골목의 작은 보스인 독수리 역을, 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가장 먼저 등장한 문희는 서울역에서 헤매다 부하들의 안내로 날 만나는 청순한 처녀 역을 맡았다.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로 나와 이 감독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하드보일드한 청춘영화를 만드는 데 우리보다 더 어울리는 단짝은 없었다. 우리의 만남은 이 감독의 스타일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그 전까지 이 감독은 주로 장동휘·박노식·최무룡 등 선배 배우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63) 등 대단한 작품도 만들었지만 그는 작품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이후 나온 ‘만추’(66), ‘원점’(67), ‘휴일’(68) 등은 우리의 호흡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흑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연극배우 겸 탤런트 송재호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내 조직원 중 하나로 출연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찾아왔다. 나는 부산에서 장사하는 송재호의 누나와 잘 아는 사이였다. 그 분은 “우리 재호, 잘 좀 봐 줘요”라고 부탁하곤 했다.



 송재호는 ‘흑맥’을 연극 무대에 올리고 싶어 했다. 연극배우인 그에게 여유가 있을리 없었다. 내가 이문희 작가에게 연극 저작권을 사서 송재호에게 주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그가 TV의 터줏대감이 된 걸 보면 무척 흐뭇하다.



 ‘흑맥’은 문희(본명 이순임)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이 감독은 여배우 문정숙의 성과 자신의 이름 끝자를 따서 ‘문희’란 예명을 지어주었다. 한국영화는 당시 연인의 하룻밤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없었다. 나와 엄앵란은 몇몇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여자가 아침에 남자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장면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곤 했다.



 이 방식은 ‘흑맥’에도 적용됐다. 문희는 옷이 없어서 독수리의 옷을 빌려 입은 채 비 맞는 연기를 해야 했다. 모든 스태프가 지켜보고 있었다. 신인배우 문희로선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섹시한 설정이었다.



 여주인공은 브래지어를 차지 않고, 앞 단추를 모두 푼 채 남자의 와이셔츠만 걸쳤다. 남자 와이셔츠여서 문희의 몸에는 다소 헐렁했다. 지붕 위에서 화분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 비를 연출했다. 문희는 빗속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런데 물이 한 쪽으로 쏠려서 옷이 붙어버리는 바람에 다른 한 쪽이 열렸다. 문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연기를 계속 했다. 깜짝 놀란 이 감독이 다급하게 외쳤다.



 “컷, 컷!”



 연출적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자연스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심의 규정 때문에 이 장면은 극장에서 틀 수 없었다. 신인배우 문희는 그만큼 촬영에 열중했다. 그만한 집중력이 있었기에 톱스타가 될 수 있었다. 좌로는 이 감독, 우로는 문희·송재호. 나 역시 촬영장에서 독수리가 돼 신나게 날아올랐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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