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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눈금의 차이를 줄인다는 것

중앙일보 2011.07.26 00:03 11면 지면보기
‘꽈당’, ‘으악’ 숨이 막혀올 정도로 아프다. 그것도 잠시, 아픔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흥건한 바닥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일찍 나서는 남편에게, 꼭 누구를 불러 잡아달라고 부탁하라며 거듭거듭 당부하던 아내의 말이 겹쳐진다. 벌떡 일어나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쉽지가 않다. 성경이 든 가방을 밀어놓고 일어나기 쉬운 자세를 찾아, 목발과 바지춤을 추슬러 일어났다.









일러스트=박소정







 왼쪽 무릎이 깨져 피가 나고 부어오르지만, 거들떠볼 겨를이 없다. 그보단 척척히 젖어오는 바지와 나뒹군 가방을 쏟아지는 비로부터 피하는 것이 급하다. 아수라장된 마음을 추스르며 목발을 왼손으로 붙잡고 허리를 굽혀 묵직한 가방을 집었다. 신경은 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마치 얼음 위에서 발을 떼지 않고 미끄러뜨리는 것처럼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목발은 바닥과 닿는 고무가 빗물로 반질반질해진 면과 비스듬히 서지 않게, 또한 목발질의 폭을 아주 좁게 잡으며 교회 문을 향해 갔다.



 채 2m도 안 되고, 시간으로도 1분이 안 걸릴 그곳이 무슨 태산 같고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생각이다. 아내의 말대로 교회 안에 있는 누구를 불렀으면 어땠을까. 또한 그곳이 겁나게 미끄럽다는 것은 오랜 목발경험상 충분히 알고 있고,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 왔기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교회 예배당이 건축 된지도 벌써 3개월째다. 조그맣고 아담한 교회를 계획해 모든 교인들이 합심해 짓고, 이러 저런 편의시설까지 직접 챙겼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2명, 목발을 짚는 사람이 3명, 경증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 3명 등 교인의 약 20%를 차지한다. 거기에 함께하는 가족들까지 합치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는 수준급을 넘는, 최고라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예배당이전위원회에도 건축위원회에도 장애당사자들이 참여했고, 그런 만큼 다른 어느 교회와도 구분되는 모습으로 건축을 했다.



 그런데 건물이 완공될 쯤 보니, 턱이 없도록 낮춰 지었으면 좋겠다는 주문과 달리 약간의 턱이 생겼다.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도로에서부터 교회 문에 이르기까지 시멘트를 발랐다. 휠체어가 어렵지 않게 교회와 화장실을 오가게 될 정도로.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위에 페인트가 삥 돌아가며 칠해졌다. 건축업자가 보기 좋고 예쁘게 서비스를 한 것이다. 곧 비가 왔다. 땅과 닿게 짓지 않은 바닥은 아무리 경사를 없애도 기울어 있다. 그 바닥이 페인트와 합세해 비가 올 때는 미끄럼판이 됐다.



 그래서 그것을 걷어 내자고 했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 중에 나보다 목발 짚는 것이 더 중증인 후배가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 넘어져 놀라는 바람에 속옷에 실례를 하고, 손목과 무릎이 다쳐 퉁퉁 부었다는, 그래서 기도도 못하고 집에 들어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내에게 그 사정을 목사님께 말씀 드리라고 했다.



 며칠 후 주일 아침, 장마철이어서 계속 습기를 머금은 바닥은 틀림없이 더 미끄러울 것이라는 걸 알면서 목발이 찍 미끄러진 것이다. 다 알면서 당하는 억울함보단 그렇게 조심했건만 넘어져버린, 그 감출 수 없는 무력감이 미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목사님이 계셨다. “저도 한 건 했습니다”하니, 목사님은 당장 조치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교회 문 밖, 들어오는 입구와 화장실로 이어지는 페인트칠 된 부분 위에 인조잔디가 깔렸다.



 우리의 마음에는 두 개의 저울이 있고, 그 저울의 눈금은 서로 다르다고 한다. 나를 재는 저울과 남을 재는 저울의 눈금이 다르다는 뜻일 게다. 예배당을 지으며 우리교회만은 편의시설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예산문제 등이 걸려 있기에, 또한 자꾸 편의시설만 강조하는 것 같아 한 발 물러섰다. 또한 페인트칠 된 것은 비와 눈이 오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바꾸자고 했지만 그렇게 다급하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미룸의 쉬운 유혹들 때문에 이렇게 잃어버리고 맥 빠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다. 빨리 고칠 수 있도록 했다면 후배나 나나, 교회의 누구도 피 흘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와 너라는 마음속 저울의 눈금이 쉬운 것들에 유혹 받고, 우리의 현실 이면에 있는 그림을 자꾸 가리게 한다. 하지만 눈 비비고 애써 그 눈금의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할 때 삶의 값은 더 커지지 않을까.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일러스트=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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