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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바 교수 “과학자라면 규명의 달걀 2~3개는 품어야”

중앙일보 2011.07.26 00:01 종합 10면 지면보기



내달 7일 대전 ‘아시안사이언스 캠프’ 창안자 고시바 교수



21일 오후 도쿄대 연구실에서 만난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젊은 과학도들과의 만남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사진=김현기 도쿄특파원]



어렸을 적 그의 꿈은 군인이었다. 하지만 중학시절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오른팔이 불편해져 그 꿈을 접었다. 입원 기간 중 담임선생님이 읽어 보라고 전해 준 아인슈타인의 저서가 물리학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도쿄대학 물리학과를 꼴찌로 졸업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공부보다 탐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85) 도쿄대 특별영예교수. “수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이 배운 건 모두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마음 속의 탐구 대상을 뜻하는 ‘규명의 달걀’을 언제나 두세 개 정도 품고 있어야 한다.” 그가 제시하는 과학의 기본, 그건 재미와 호기심이었다.



 그는 다음 달 7~13일 대전 KAIST에서 열리는 제5회 아시안사이언스 캠프(ASC)에 고령임에도 참가를 결심했다. 스스로 ASC를 창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교육의 필요성, 그리고 아시아의 힘을 한국에 널리 알리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ASC를 창안한 배경은.



 “유럽에서 매년 유럽의 젊은이들이 노벨상 수상 학자들을 초청해 함께 캠프를 하는 걸 보고 ‘이젠 아시아의 시대인데 아시아도 이런 캠프를 만들어야겠다’고 통감했다. 대만의 노벨상 수상자 리위안저(李遠哲·이원철·75) 교수와 의기투합해 2007년 첫 모임을 대만에서 열었고, 이후 인도네시아·일본·인도에서 개최했다.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정치체제나 종교 등 외부환경에 흔들림 없이 존경할 만한 과학자들과 함께 하나가 돼 토론하고 꿈을 키우는 것이 이 캠프의 취지이자 목표다.”



 -이번 대전 캠프에 뭘 기대하나.



 “직접 강의에 참가해 내 전공 영역인 소립자(素粒子)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 또한 과학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현대사회를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꿈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캠프를 통해 전하려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과학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고, 모르거나 궁금한 것을 묻는 차분한 캠프가 됐으면 한다.”



 -한국의 경우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가 크다.



 “현대 사회는 경쟁사회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난 과학도 결국 재미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를 제공하는 선생님들이다. 과학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학생은 과학에 대해 재미를 느끼게 된다. 우수한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교에 가서 일정 시간 과학을 후배에게 가르치게 하면 된다. 횟수에 따라 장학금의 변제를 면제해 주거나 줄여 주는 식으로 연계해 운영하면 새로운 예산이 필요 없다.”



 -한국선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한데.



 “먼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응용과학은 말 그대로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산업계에서 응원하고 지원한다. 하지만 물리나 천문학 같은 기초과학은 산업계의 이익과 전혀 연관성이 없다. 산업계가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따라서 결국 정부가 응원하는 수 밖에 없다.”



 -한국 출신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아직 없다.



 “나도 그랬지만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그 누구도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한 사람은 없다. 노벨상을 의식하면 결국은 초라하게 끝난다. 마음을 너무 느긋하게 가져서도 곤란하지만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연구하는 게 과학자의 자세다. 어떤 상이나 결과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하면 어떻게 될까’란 생각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언젠가는 ‘대어(大魚)’를 잡을 것이다. (한국처럼) 누구누구가 노벨상 가능성이 있으니 옆에서 띄우고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일본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결국 호기심과 재미를 갖고 연구했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 계속 연구의 깊이가 깊어지고 남들이 하지 않은 분야까지 파헤치게 되고…. 그 결과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꾸준히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다고 믿는다.”



 -이번 대전 ASC 성공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젊은 과학도들이 꿈을 품고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북돋워야 한다. 2009년 일본에서 열린 ASC때는 천황(일왕)내외가 직접 행사장을 찾아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한국도 과학육성에 관심이 크다고 하니 대통령 등 지도자들의 큰 관심과 격려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아시안사이언스 캠프(ASC)=18~22세 아시아 과학도들이 매년 여름 일주일간 숙식을 함께 하며 노벨상 수상자 등 유명 과학자의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 는 행사다. 2007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처음 열렸으며 올해가 5회째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도쿄대 특별영예교수. 뛰어난 감각을 지닌 과학자로 불린다. 그래서 후진들도 깜짝 놀랄 참신한 아이디어를 속속 내놓는다. ‘신비의 미립자’로 불리는 뉴트리노 12개를 검출하는 데 성공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고시바 교수는 여생의 두 가지 키워드를 ‘아시아’와 ‘과학교육 보급’으로 잡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목욕하고 오후 8시면 잠자리에 드는 게 40년 이상 계속된 그의 생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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