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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동네 빵집 빵 먹으면 탈나나

중앙일보 2011.07.26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경제선임기자




“대기업은 경제 야쿠자냐?” 요즘 일본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이케이도 준(池井戶潤)의 소설 『시타마치(下町) 로켓』에 나오는 말이다. 중소 엔진메이커 사장인 쓰쿠다 고헤(佃航平)가 대기업의 횡포에 격분하는 장면에 나온다. 제145회 나오키(直木)상 수상작으로 뽑힌 이 작품, 한마디로 열혈 중소기업 분투기다. 전반부엔 대기업을 상대로 쓰쿠다의 처절한 사투가 펼쳐진다. 특허를 가로채려는 대기업의 악질적인 소송, 예고 없이 거래를 끊는 원청기업의 횡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주거래 은행의 배신, 알짜 기업을 헐값에 삼키려는 하이에나 자본의 공격, 집안일에 더 신경 쓰라는 자식의 투정….



 쓰쿠다는 위태위태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단 하나, 로켓 엔진의 밸브를 만드는 기술력이다. 일본 언론들은 중소기업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기업소설이라며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중소기업이 얼마나 될까. 실제론 훅 불면 날아가는 곳이 더 많다. 그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소설이 대리만족을 주는 게 아닐까.



 불행한 집안은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다는데,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려워진 이유가 다 다르다. 대기업이 짓밟아, 경기가 나빠져, 돈이 모자라, 사람이 부족해, 정부가 안 도와줘, 기술이 달려…. 이를 정부가 다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대신 우리 정부는 중소기업을 어렵게 만든 범인으로 대기업을 지목하고 있다. 그래서 상생이다, 동반성장이다 하며 대기업을 옥죄는 거다.



 그러나 대기업에만 100%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문제의 씨앗은 오래전 정부가 뿌려놓았다. 1960~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수출 주도로 경제를 키우면서 중소기업 돌보는 데는 소홀했다. 66년 중소기업기본법을 제정하고도 83년에서야 그 시행령을 만든 게 상징적인 사례다. 또 75년의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은 대기업 계열이나 하청 중소기업에 지원을 집중함으로써 대·중소기업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이런 풍토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군림하는 갑(甲)이 됐다. 부당거래, 하도급 비리, 착취계약은 그런 구조에서 가능했다.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하며 목에 힘주는 기업 관료 체질도 굳어졌다. 이는 형상기억합금과 같다. 정부의 감시가 느슨해지면 금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숱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 관계가 개선되지 못한 걸 보면 그렇다.



 일반적 의식구조도 대기업에 기울어 있다. 대기업엔 엘리트가 가고, 중소기업엔 루저들이 간다는 편견이 심하다. 그래서 청년 실업률이 높은데도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많다. 중소기업이 모처럼 좋은 청년 뽑았더니 부모가 찾아와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 취향도 대기업 친화적이다. 빵집 하나만 봐도 그렇다. 어디서나 파리바게뜨 아니면 뚜레쥬르다. 동네 빵집은 견뎌내질 못한다. 자본력에 밀리고, 화려함 좋아하는 소비자에게 차인다. 그뿐인가. 하필 중소기업들의 이익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 건물 로비엔 신라호텔이 운영하는 카페 아티제가 들어섰다. 중소기업형 커피숍도 많고 많은데 말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풍경인가. 동네 빵집 빵 먹고, 중소 커피숍 커피 마시면 어디 덧나나.



 이처럼 중소기업이 어려워진 데엔 정부·대기업·개인이 골고루 기여했다. 스스로 경쟁력을 못 키운 중소기업 잘못도 크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때릴 수가 없다. 고도성장의 부산물이자, 우리 경제의 그늘진 뒷모습이다.



 힘들게 제품 만드는 대신 편하게 특허사용료나 받자는 직원들에게 쓰쿠다가 묻는다. “너희들은 꿈도 없냐”며. 현실적으로 중소기업 혼자 그런 꿈을 키우긴 어렵다. 모든 경제주체가 십시일반으로 나서야 한다. 이 책, 국내에도 소개돼 ‘중소기업 문제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자각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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