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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 국정원 1차장 라종일 중앙SUNDAY 인터뷰

중앙일보 2011.07.25 00:25 종합 2면 지면보기



“아웅산 테러범 강민철 송환 시도, 햇볕정책 탓 포기”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북한 공작원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건물 뼈대만 남은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사건 직후 부상당한 채 체포된 북한 테러범 강민철(2008년 사망)의 모습. [중앙포토, 연합뉴스]











라종일 전 차장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정부 당시 미얀마에서 장기 수감 중이던 북한의 아웅산 폭탄 테러범 강민철(2008년 사망)의 한국 송환 방안을 검토했고, 미얀마 정부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국정원 1차장으로 강민철과의 접촉과 석방 교섭에 나섰던 라종일 전 주일 대사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강민철은 북한 지령에 따라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를 방문하려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폭탄을 터뜨려 한국 고위 관료 등 21명을 숨지게 했다. 강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자신이 북한 공작원임을 자백한 점이 참작돼 집행이 보류됐고, 25년간 복역하다 53세 때인 2008년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라 전 대사는 중앙SUNDAY(7월 24일자)와의 인터뷰에서 “98년부터 미얀마 당국의 협조를 얻어 지속적으로 강민철을 면회하면서 아웅산 테러 사건의 전말에 대한 진술을 확보했다”며 “미얀마 측도 강민철을 풀어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라 전 대사는 “당시 정부는 강민철의 국내 송환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영향 등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며 “남북한 당국이 겉으로는 민족화합을 외치면서도 불구가 된 채 이국 땅에 수감 중인 한 젊은이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강민철을 한국에 데려오거나 제3국에서 살게 하지 못한 데 대해 공직을 그만둔 뒤에도 끊임없이 자책감을 가져왔고 이런 사실을 공개해 국가 권력에 의해 버림받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속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민철과 접촉한 경위는.



 “강민철은 흉악한 테러범이지만 동시에 분단 상황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도움을 주고 싶었다.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이듬해부터 국정원으로 개편) 1차장이 된 뒤 정보 교류차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미얀마 2인자이자 정보부장인 3성 장군 킨 윤의 협조를 얻어 라면과 김치 같은 위문품을 전달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강민철을 석방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우리 정부는 그를 국내로 데려오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두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하나는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서였고, 또 하나는 강민철 송환으로 남한의 자작극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2000년대 초에는 평소 친분이 있는 극동방송 회장 김장환 목사에게 석방 교섭을 부탁하기도 했다. 나는 꼭 한국으로 데려오자는 것도 아니었다. 제3국에라도 가서 치료받으며 단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게 해 주고 싶었다. 한 번은 호주 정부 관리와 식사를 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북에서도 강민철은 버림받은 존재인가.



 “강민철은 마지막까지 탈출하려 했다. 약속한 곳으로 가면 보트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을 조국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보트는 없었다. 강민철은 미얀마 군경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려다 한쪽 팔이 잘리고 온몸이 불구가 된 채 붙잡혔다. 수류탄 핀을 뽑고 안전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터지지 않는데 바로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강민철은 그때 ‘아, 조국이 날 죽여버리려고 이런 수류탄을 지급한 거구나’ 하고 배신감을 느꼈고 그래서 북한 공작원임을 자백하게 됐다고 했다.”



◆아웅산 테러=1983년 10월 9일 북한이 ‘버마’(현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역에서 자행한 폭탄 테러. 서남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노렸다. 서석준 부총리 등 수행원 17명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강민철 등 북 공작원 3명이 체포 또는 사살됐고, 버마는 북한과 단교(2007년 재수교)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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