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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고맙다, HCA”

중앙일보 2011.07.25 00:25 경제 1면 지면보기



미국 판매 돌풍 뒤엔 든든한 할부·리스금융 지원 있었다



존 크라프칙 현대차아메리카 CEO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걱정 마세요. 저희가 차를 되사드리겠습니다.”



 2009년 1월 2일 미국 자동차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현대차 광고였다. 금융위기로 바짝 움츠러든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든 이 광고로 현대차는 단번에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현대차 전속할부금융회사인 현대캐피탈아메리카(HCA) 현지 직원이었다.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공포에 짓눌려 누구도 실행에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현대차와 HCA는 달랐다. HCA가 아이디어를 내자 현대차아메리카(HMA)는 3000여 명의 고객에게 바로 설문을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HCA와 HMA 마케팅부서는 머리를 맞댔다. 그러곤 37일 만에 TV광고를 만들어냈다. 2004년부터 현대차 돌풍을 이끌고 있는 HMA의 존 크라프칙(John Krafcik) 최고경영자(CEO)는 “업계에선 이 광고 사례가 ‘현대 스피드’로 통한다”며 “HCA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성공작이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부촌 오렌지카운티에서 가장 큰 자동차 판매단지 투산. 이곳에서 현대차 딜러를 하고 있는 존 패터슨은 다음 달 이사한다. 이미 한 차례 이사했지만 매장이 너무 좁아 옆 건물로 다시 옮기기로 했다. 그는 “1년 반 전에만 해도 한 달에 12대 팔았는데 지금은 100대도 없어서 못 판다”며 “회사에서 물량만 대준다면 월 200대도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일고 있는 현대차 바람의 비결로 품질·마케팅과 HCA의 존재를 꼽았다. 현금 구입 비중이 전체의 40%가 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할부·리스금융 비중이 80%가 넘는다. 알짜 고객일수록 리스를 선호한다. 새 차를 2~3년 타다 신모델이 나오면 바꾸기가 쉬워서다. 할부·리스 프로그램의 경쟁력이 차 판매를 좌우한다고 할 정도다. 현대차도 1989년 전속할부금융사를 설립했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현대차는 할부 프로그램보다는 저가 전략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할부나 리스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신용도가 높은 고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전시킨 건 정몽구 회장이었다. 그는 2007년 4월 현대차와 현대캐피탈 본사에 “미국 내 할부금융회사를 강화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정 회장이 할부금융사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건 저가 이미지 탈출을 위한 고육책이었다. .



새 차 값 할인이 중고차 값 하락을 불러 ‘현대차=저가’ 이미지를 고착시켰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면 차 값 할인 대신 파격적인 할부·리스로 고객을 붙잡아야 했다. 이를 위해선 전속할부금융사가 절실했다. 현대차가 운영하던 할부금융사를 현대캐피탈이 위탁경영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그런데 현대캐피탈이 경영을 맡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자동차 할부금융을 해온 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 계열 금융사를 비롯해 은행·신용협동조합이 줄줄이 파산했다. 할부금융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은행·신협은 자동차 리스 시장에서 아예 철수해 버렸다. 미국 금융회사가 움츠러든 빈자리를 HCA가 메워갔다.



 금융위기 후 현대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태도는 눈에 띄게 호전됐다. 오렌지카운티 앤하임에서 현대차 딜러를 하고 있는 제라드 하든 사장은 “유럽 차나 스포츠카만 고집하던 부유층 고객 사이에 ‘합리적인 소비’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연비가 좋은 현대차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HCA 초대 대표를 맡은 원석준 법인장은 “금융위기가 불거진 게 우리로선 전화위복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현대차가 YF쏘나타를 출시할 때 HCA는 월 199달러짜리 리스 프로그램을 내걸었다. 경쟁 차종이 월 300달러인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차 값 할인 대신 리스로 고객을 끌어들이자 중고차 가격도 꾸준히 올라갔다. 2005년 신차 대비 40% 안팎이었던 쏘나타와 엘란트라의 3년 된 중고차 가격이 지난해는 각각 54%와 62%로 뛰었다. 엘란트라는 미국 자동차 리스 분석기관 ALG가 뽑은 ‘2011년 중고차 가격이 가장 높은 차종’에 뽑히기도 했다.



 2007년 39억 달러였던 HCA의 자산도 올해 130억 달러로 4년 만에 3.3배가 됐다. 그럼에도 30일 연체비율은 2008년 3%에서 올해 2.1%로 되레 떨어졌다. HMA 크라프칙 CEO는 “지난해와 올해 선보인 제네시스와 에쿠스가 선전하고 있는 것도 HCA의 할부·리스 프로그램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라 고 강조했다.



어바인·코스타메사(캘리포니아주)=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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